한국은 2007년 1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다.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한국은행 목표치(3.0±0.5%)의 상단(3.5%)을 넘었다. 2008년 7월엔 6.2%까지 치솟기도 했다. 국제유가 상승에다 환율 상승이 겹쳐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 그때처럼 물가가 폭등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유가 등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폭이 그때보다는 작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환율이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회복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한은이 예상하는 수준보다 국제 원자재가격이 더 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의 시점을 조금 당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아시아 인플레 확산] 원자재값 고공행진…공공요금 등 지방선거후 줄줄이 인상 우려

◆국제 유가가 관건

국내 물가상승을 유발하는 요인은 내부 수요측면과 외부 비용측면으로 나뉜다. 경기가 회복돼 수요가 늘고 이로 인해 물가가 오르는 것이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이며,국제 원자재 가격이 뛰어 비용이 높아져 발생하는 것이 비용견인 인플레이션이다. 현재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은 비용견인 인플레이션 쪽이다.

그 중에서도 국제유가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한국이 주로 사들이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가격이 되는 두바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8년 말 배럴당 4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서 최근 83달러대까지 올랐다. 문제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한국석유공사는 최근 유가전망 보고서에서 "경기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100달러 재돌파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투기자금이 가세하는 상황에서 2008년 여름과 같은 수급불균형 문제가 부각되면 100달러 재돌파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런 위언 블랙스톤 부회장도 올 연말께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물가는 0.2%포인트 오를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만약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 2007~2008년처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4%로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 철광석 구리 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도 국제유가와 비슷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어 부담이다.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되나

물가에 부담을 주는 것은 원유나 원자재뿐만이 아니다. 지난 겨울 폭설과 한파로 농산물 가격이 최근 들어 가파르게 뛰고 있다. 배추 한 포기 가격은 6000원에 이르러 1년 새 40%나 올랐고 시금치의 상승폭은 60%에 달한다. 갈치와 고등어 등 생선류도 어획량 감소 여파로 1년 전과 비교해 30% 이상 치솟았다.

그런데도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월 2.7%,3월 2.3% 등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뭘까. 한은 관계자는 "정부의 대학등록금 안정화 정책 등 개인서비스요금이 낮은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각종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당장 버스요금 인상 요구가 거세다. 지식경제부는 가스요금 원가연동제를 하반기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전력도 전기요금 인상을 바라는 눈치다. 여기에 경제가 회복되면서 임금인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물가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금융노조는 최근 2년간 은행원 임금이 동결 또는 삭감된 만큼 올해는 반드시 3.7% 인상을 관철시키겠다고 밝히고 있다.

◆출구전략 시기 논란 가열

물가상승을 가장 확실하게 잡는 방법은 정책금리(한은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이다. 인도가 최근 두 달 연속,베트남이 지난해 11월 1%포인트,호주가 지난해 10월부터 5번 정책금리를 올린 이유는 하나같이 물가의 추가 상승을 막기 위해서다.

국회 예산정책처,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경제연구원 등이 정책금리 조기인상론을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연 2.0%인 한은 기준금리를 지나치게 오래 유지하면 물가상승이란 부작용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는 "하반기 이후 물가상승 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되므로 단계적 출구전략 대책 시행이 필요하다"며 "특히 기대인플레 심리를 차단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회의가 끝난 후 "저금리로 인해 향후 또다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민간 자생력 회복이 중요하다'는 기존 입장과 상당히 다른 것이어서 출구전략이 다소 빨라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