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16일은 세계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 140여년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날이다. 골드만이 사기혐의로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소를 당한 것은 유죄 여부가 확정되는 것을 떠나 고객에게 쌓아온 신뢰라는 최대의 무형자산이 처참하게 무너진 굴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중의 하나였던 금융회사들의 탐욕을 바로잡기위해 금융개혁을 추진하는 와중에서 탐욕의 진원지인 월가를 대표하는 최강의 금융회사를 콕 찍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정치적 의미 또한 작지 않다.

SEC의 골드만 제소는 재판과정에서 적지않은 논쟁을 불러일으킬게 뻔하다. 그만큼 불법여부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 사안이다. 제소 내용은 이렇다. 골드만이 투기성 모기지 거래가 판을 치면서 버블 논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2007년 1월 123개의 모기지로 구성된 부채담보부증권(CDO) 상품을 중개했다. ‘합성 ABACUS 2001-AC1 CDO’였다.

당시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폴슨 앤드 코라는 헤지펀드의 제안이 발단이 됐다. 상품설계는 제3자인 ACA자산이 맡았다. 이 회사는 모기지 신용위험을 전문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회사다. 골드만이 상품설계자로 선택했다.

우선 SEC 제소내용과 골드만의 반격을 따져보기 전에 주목할 게 있다. 바로 CDO 앞에 붙은 합성 (synthetic)이라는 용어다. 합성이라는 말이 중요한 것은 골드만이 주도한 이 CDO는 거래 상대방이 실제 모기지를 소유하는 것만이 아니고 신용부도스와프(CDS)와 짬뽕이 돼서 판매된다는 것이다.

CDS는 기업이 부도가 나 특정 채권이나 원리금을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드는 일종의 보험 상품이다. 일정한 보험료를 낸 다음 실제 부도가 나면 부보대상 금액 만큼 받는 구조다. 부도 위험만을 따로 떼내 거래하는 파생상품으로 이번 골드만 케이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골드만이 만든 ABACUS CDO는 폴슨의 제안으로 CDS와 엮여 있다.

이제 문제가 된 골드만의 상품거래를 들여다보자. ACA가 설계한 합성 CDO 상품은 투자자들에게 팔려나갔다. 그리고 불과 3-4개월만에 CDO에 들어간 모기지의 80% 이상의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상태는 나빠져 채 1년도 안돼 무려 99%가 쓰레기 채권으로 변했다. 해당 CDO는 순식간에 쓸모없는 종이쪽지가 된 것이다. 모기지 시장의 버블이 꺼지면서 투자자들은 깡통을 차게 된 셈이다.

모두 돈을 잃었다면 문제가 없지만 잃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따는 사람이 있는 게 투자세계의 법칙. 거의 모든 사람이 눈이 멀 정도로 모기지 시장이 불을 뿜어내던 당시에도 승리의 휘파람을 부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헤지펀드 폴슨 앤 코였다. 폴슨은 시장이 추풍낙엽 처럼 나자빠지는 속에서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 바로 CDS 매입이었다. 그는 ABACUS CDO가 부실화될 경우 해당 금액 만큼 돌려받을 수 있는 CDS를 사뒀고 그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ACA를 통해 설계토록 한 CDO가 쓰레기가 될 것이라는데 과감하게 베팅을 한 것이다. 그 댓가는 무려 10억달러의 이익이었다.

손해를 본 측은? 대서양 건너 있던 네덜란드의 ABN암로와 독일계 IKB였다. ABN암로 (나중에 RBS로 넘어감)는 무려 8억4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IKB는 1억5천만달러를 날렸다. ABN암로는 폴슨이 매입한 CDS를 중개상을 통해 팔았다. 결국 해당 CDO가 부실화되면서 부실화된 것 만큼 물어줄 수밖에 없었다. IKB는 1억5천만 달러어치의 CDO를 직접 매입, 손실을 입은 케이스다. 이것이 이번 골드만 CDO파장의 전말이다.

SEC는 골드만이 폴슨의 하락 베팅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삼았다. 가격이 떨어질게 분명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중간에 끼어 있는데도 이를 투자자들에게 숨기고 좋은 상품이라고 팔았다는 것은 투자자들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이다. 이 거래의 총괄을 맡은 인물은 파브리스 투루 부사장. 31살짜리 애송이 부사장이 거래 쌍방의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을 교묘하게 숨기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겼다는게 SEC 제소의 핵심이다. 이 거래로 골드만은 1500만 달러의 수수료를 챙겼다.

골드만은 SEC제소에 강력 반발하면서 전면전을 치를 태세다. 과연 골드만의 반박은 옳은것인가.

우선 골드만은 폴슨의 하락 베팅 ‘미고지’는 관행이라고 주장한다. 투자자들에게 거래 쌍방을 알릴 의무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설령 폴슨이 하락쪽에 베팅했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해도 과연 투자자들이 그 상품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폴슨은 그때까지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헤지펀드 였으며 그동안에도 하락쪽에 베팅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봤다. 한마디로 폴슨의 하락 베팅 사실 자체를 투자자들이 미리 알았다고 하더라도 투자결정에 별 도움이 안됐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실제 거래 상대방을 훤히 꿰고 있던 골드만도 이번 상품에 투자해 75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거래 주선으로 챙긴 수수료의 5배를 깨먹은 것이다.

둘째 ABACUS 상품 설계를 제3자인 ACA가 총괄했지만 폴슨이 그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이다. 이 상품을 거래하자고 골드만에 아이디어를 낸 것은 폴슨이었지만 실제 상품설계를 ACA가 했다. 보통 믿을만한 제3자를 내세우는게 관행이고 그래서 골드만이 ACA에 부탁한 것이다.

그런데 ACA의 상품설계에 폴슨이 어느 정도 관여했고 그후 폴슨은 하락쪽에 베팅했다. 이것이 이번 재판의 최대 쟁점이기도 하다. 과연 하락쪽에 베팅한 폴슨이 ACA의 상품설계에 얼마나 개입했느냐는 것이다. SEC는 상당히 개입했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그 과정에서 폴슨이 2억달러의 매입쪽에 투자한 것처럼 ACA를 호도했다고 밝혔다. 폴슨과 ACA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것 처럼 보이게 현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골드만은 폴슨이 2억달러의 매입쪽에 베팅했다는 점을 얘기한 적은 없으며 시장 조성자의 입장에 있는 골드만으로선 거래 쌍방이 누구인지를 알릴 필요가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ACA의 상품설계에 폴슨이 개입했다고 하지만 실제 ACA가 모든 것을 지휘한 만큼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실제 ACA는 파생상품설계에 일가견을 갖고 있는 유명한 금융회사였다. 폴슨이 CDO에 끼어넣을 모기지를 제안했지만 상당 부분은 자신들의 독자적인 신용평가에 따라 거절, 결국 상품설계의 총괄은 ACA가 맡았다는 것이다. 폴슨이 상품설계에 개입했고 폴슨의 의도처럼 설계된 상품의 속성상 해당 CDO가격이 떨어질게 분명했다면 ACA가 이 거래를 지속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셋째 2007년 골드만의 내부 임직원간 이메일이 문제가 되고 있다.상원 상설조사 소위원회의 칼 레빈 위원장이 지난주말 공개한 블랭크 페인 최고경영자(CEO)의 이메일을 보자.“우리는 모기지 시장의 혼란을 피하지 않았다.우리는 돈을 잃었다.이후 쇼트(매도)포지션으로 잃었던 것보다 더 많이 벌었다” . 결국 이 메일은 골드만이 당시 모기지 상품에 매각쪽으로 베팅, 적지않은 돈을 벌고 있었으며 그 와중에 매입을 부추기는 상품을 설계해서 판 것은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SEC한테 사기혐의로 제소받은 투르 부사장이 여자친구에게 보낸 이메일도 이같은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그는 “서브프라임 비즈니스는 완전히 죽었대. 불쌍한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은 얼마 가지 못할 거야”라고. 이는 골드만이 서브프라임 시장이 붕괴될 것을 알면서도 CDO를 내다 팔았다는 확실한 증거라는게 골드만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같은 반박에 대한 골드만의 해명 또한 전혀 엉뚱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골드만은 2006년까지만 해도 모기지 매입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시장이 늘 한쪽으로 달릴 수는 없는 법. 2007년에 들어서면서 위험회피가 절실해졌고 점차 매입 포지션의 위험을 상쇄할 수 있는 매도 포지션의 투자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기에 거의 모든 미국의 은행들이 글로벌위기로 처참하게 무너졌을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메릴린치는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시티그룹 역시 엄청난 피해를 봤다.투자원칙의 기본인 ‘몰빵 금지’를 실천하지 않은 이들과 다변화로 피해를 최소화한 골드만의 차이를 인정해야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당시 모든 금융전문가들은 ‘역시 골드만’이라며 골드만의 빼어난 리스크 관리 기술을 극찬했다. 또 골드만이 모기지 거래로 챙긴 수익은 2007년 고작해야 5억달러에 불과했다.당시 전체 수익의 1% 밖에 안됐다. 골드만으로선 모기지 거래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은 셈이다.

이번 SEC제소 과정에서 드러난 이상한 거래는 보기에 따라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거래였다.폴슨이 CDO의 부실을 예상하고 하락에 베팅한 것과 달리 ABN암로와 IKB,그리고 골드만 조차 문제의 CDO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모든 거래에는 쌍방이 있는 것이고 그 누구도 미래를 완전하게 점칠 수 없다는 점에서 손실을 본 측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개미투자자들과 전혀 다른 프로페셔널이다.

상장 폐지를 앞둔 주식조차도 매입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모든 주식이나 채권,특히 위험성이 높은 파생상품거래는 리스크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사자들이 지는 수밖에 없다. ABN암로가 CDS를 팔면서 챙긴 수수료는 700만달러였다. 그 돈을 벌고 싶었을 뿐이다. 당시에는 해당 CDO가 쓰레기가 되리라고 생각지도 않은 것이었다. 잘했고 못했고는 따질 일이 아니다. 결과로만 판단해선 안된다. 골드만이 SEC가 제소하자 이미 벌어진 결과만을 놓고 잘못을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앞으로의 재판에서 골드만이 진다고 할 수도 없다.골드만은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 답게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변호사를 쓸게 분명하다.SEC의 공격에 흔들리지 않는 정교한 논리로 무장한 방패들이 대거 달려들어 한판 승부를 겨룰 것이다.

문제는 골드만이 재판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고객에게 신뢰를 잃게 된다는 점이다.골드만은 전 세계 금융시장을 포괄하는 네트워크를 무기로 전 세계의 투자자들과 수없이 많은 거래를 하면서 세계 최고의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그들이 배출한 인재만으로도 미국 정부를 구성할 만큼 막강한 인맥을 갖추고 있다. 그런 골드만이기에 이번 SEC의 제소는 재기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골드만의 브랜드를 훼손시켰다.

비록 골드만이 이번 거래에서 잘못한 것도 없고 스스로도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은 고객이 어떤 손해를 입는 것에 개의치 않고 수수료만 챙기면 된다는 식으로 영업해왔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줬다. 고객제일주의를 외쳐온 골드만의 브랜드밑에 가려진 탐욕의 한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거나 고객의 피를 빨아먹는 거대한 흡혈문어(잡지 롤링 스톤)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오바마는 더 강한 힘으로 금융개혁을 부추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세계 최대 골드만을 향해 대포를 쏘아대면서 공격의 고삐를 죌게 분명하다. 현재 민주당 주도로 의회에 제출된 금융개혁 법안은 대부분 금융사의 탐욕스런 거래를 막기위한 장치들도 구성돼 있다.

은행들이 고객이 맡긴 돈이 아닌 자신들의 돈으로 투기적 거래를 하는 것을 막고 헤지펀드나 PEF(사모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금지시킬 계획이다. 또 파생상품의 개별적인 거래를 금지하고 거래소에서 정형화된 형태로만 거래되도록 손질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한마디로 투기적 이익을 겨냥한 과도한 거래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금융사가 다시는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렇게 될 경우 투자은행들은 엄청난 기회이익을 날리게 된다. 그것은 곧 막대한 보너스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7년 후반 닥쳐온 금융위기가 2년여 지나면서 미국 정부와 금융사와의 전쟁도 끝나가는 듯했다. 금융사들의 탐욕을 대청소하기위한 치열한 전투의 마지막 장면이 금융개혁법안의 의회 통과다. 오바마에겐 건강보험 못지 않은 대전투를 확실하게 끝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자칫하면 금융사들의 완강한 저항에 힘없이 물러서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걱정이 오바마의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

그래서 꺼내든 게 이번 골드만 사건이라는 지적이 많다. 거대한 금융권력의 정점을 비수같은 공격으로 뒤흔들어놔야 금융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SEC 제소의 재판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사상 최대의 변호사 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권력을 무너뜨리려는 정치권력의 대습격은 여론전을 승리로 이끌어가고있다.

마차 행상을 하던 독일계 유대인인 마르쿠스 골드만과 그의 사위 샘 삭스가 세운 골드만은 <팀웍,신뢰,고객제일주의>를 내걸고 세계 최강의 금융사로 우뚝섰다. 사상 최대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나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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