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의 함수와 함미가 지난주 모두 인양돼 폭침의 증거가 낱낱이 조사될 수 있게 됐다. 만약 북한의 어뢰공격이 진실이라면 이는 한 국가의 군함을 선전포고 없이 타격한 '전쟁행위'다. 그간 북 정권은 남한을 무엇으로 보았는가. 지금 우리는 아닌 밤중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이유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1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의 김정일 위원장이 만나 '6 · 15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 첫 조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기간 중 북에 물적 원조와 애정을 퍼부은 구실은 모두 이 '우리끼리'가 제공한다. 이는 남 · 북 정부가 '동격(同格)의 주체'로 같이 한반도 문제를 푼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그간 남과 북이 이해하는 '우리끼리'는 분명히 달랐던 모양이다. 지난 23일 북한은 금강산 자산의 몰수조치에 앞서 "이명박 역도가 감히 우리의 태양절 기념행사까지 시비하는 무엄한 도발도 서슴지 않았다"고 질책했다. 남한 대통령의 "백성들은 어려운데 60억원을 들여 폭죽을 터뜨렸다니 북한은 좀 정신 차려야 한다고 본다"는 언급에 진노한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북한의 선전매체는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존엄을 모독한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며,태양절 '축포야회'는 "민족사에 처음 맞이한 절세 위인에 대한 '온 나라 인민'의 다함없는 흠모와 칭송"이라고 선언했다.

즉,북의 '우리끼리'는 "남북이 모두 지도자동무를 모시자"는 뜻이었던 것이다. 북 정권이 '우리'라고 말하는 남한은 '우리 신하'라는 의미이지 북에게 충고할 신분이 아니다. 남은 북에 종사할 의무를 가진 자다. 따라서 말 안 들으면 버릇을 고쳐주어야 한다. 이들이 감히 태양절을 시비한다니 얼마나 대역무도한 역적인가. 어뢰 맞을 짓을 한 것이다.

그간 북 정권은 남한을 대화상대로 여긴 적이 없다. 남한은 미 제국주의 노예이고 북이 한반도의 종주(宗主)로서 미국을 상대한다. 그간 김-노 대통령,장관,국회의원,보수여당의 제1 실력자까지 북한으로 올라갔으며 북한 지도자는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다. 자고로 동양의 제왕은 남면(南面)하고 앉아 그를 섬기는 제후들을 맞이할 뿐이다. 따라서 북주(北主)가 중국에 가는 일은 있어도 남의 대통령과 회담하러 내려오기는 기대할 수 없다.

북의 이 터무니없는 상전 의식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는 말할 나위가 없다. 실상 북한은 핵무기 확산,납치,테러,마약 제조,달러 위조,거대한 인권 탄압과 21세기의 세습 왕조로 국제사회에서 기피되는 불량국가(rogue state)다. 그러나 남한에는 어떤 수모에도 그를 지키고 흠모하는 집단이 있기에 북의 자기도취는 계속되는 것이다. 남한의 정치가들은 북의 지도자를 만나 뵙기에 안달하고 만경대에 북 정권의 번영을 축원하는 글을 남겼다. 학교는 항일영웅 김일성과 남북한을 분단시킨 이승만을 가르치고 방송은 주민을 학살하고 여중생을 깔아뭉갠 미군을 되풀이 보여주었다. 김대중 정권이 거액의 비밀 송금으로 거의 붕괴하게 된 북 정권을 기사회생(起死回生)시킨 이래 그들의 인민속박 통치자금과 핵 제조의 현금자본이 어디에서 조달됐는지는 자명한 일이다.

천안함 격침에 누구를 탓할 것인가. 지금은 숨을 죽이고 있지만 향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우리민족끼리 잘 해보자는 세력이 고개를 들 것이다. 동족이 굶어죽는데 방치할 것이냐,북한에 존재하는 수백조원 자원과 금강산 개성공단을 다 남에게 빼앗길 것이냐는 주장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전쟁상태의 타격을 입고서도 국민이 깨닫는 바가 없다면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