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Biz view] '王甲' 애플의 질주…삼성ㆍLG "6개월만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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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에 가까울수록 甲…그 논리의 정점엔 '애플'
국내업체 靜中動 전략 가동…하반기 야심작으로 대반격
국내업체 靜中動 전략 가동…하반기 야심작으로 대반격
"언론보도 내용만 보면 우리 같은 사람은 바보예요. 변화를 거부하는 죄인이죠.요즘은 친지들을 만나도 온통 '아이폰' 타령입니다. 그걸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면 한도 끝도 없어요. 그래서 가만히 있습니다. 뭐 할 말이 있겠습니까. '당신들 참 못났다'고 선을 긋고 있는데…."
얼마전 만난 모 전자회사 휴대폰담당 Z부사장은 향후 스마트폰 전략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푸념이나 넋두리로 치부하기엔 얄팍한 세평에 대한 불만에 방점이 찍혀있는 듯했다. "밖에서 그 정도니 안에서는 오죽하겠어요. 온갖 회의에 불려다니며 해명 아닌 해명을 하다 보면 진짜 제 일을 하기가 힘들 정도예요. 제발 좀 그만 흔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삼성 "우리 돈으로 아이폰 판촉할 수야"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폰 열풍이 글로벌 시장을 휩쓸면서 삼성전자 LG전자는 물론 회생 조짐을 보이고 있는 팬택마저 1분기 영업이익률이 뚝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이나 LG가 1분기 출하량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실적이 둔화된 것은 누가 봐도 애플 탓이다.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회복세의 과실은 사실상 애플이 독식하는 양상으로 치달았다.
최근 '홍길동론'으로 불거진 삼성전자와 KT의 대립은 한국 휴대폰시장이 얼마나 날카로운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다. "삼성이 제대로 물량을 공급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석채 KT 회장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자 삼성 측도 "국내 제조사에서 나온 돈을 애플의 아이폰 판매 보조금으로 사용하는 마당에 뭔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다. 돈이 적군에 흘러들어가는 '루트'가 빤히 보이는데 예전처럼 대규모 패키지로 '제품+보조금'을 공급할 수는 없다는 것.삼성 관계자는 "KT의 요구는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의 입장을 외면한 것"이라고 말했다.
◆왕갑(王甲) 애플의 석권
이 같은 상황은 급기야 제조사와 통신업계간 '갑(甲)-을(乙)'논쟁까지 야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통신업계는 제조사의 '영원한 갑'으로 불린다. 통신사-대형 딜러-판매점으로 이어지는 공급체인 속에서 소비자들과 가장 넓은 접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말 SK그룹이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을 때 삼성전자 팬택 등의 단말기업체가 백기사로 나선 것도 이 같은 갑-을 관계로 치환할 수 있다. 당시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이 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 측에 'SOS'를 치자 삼성은 즉각 2500억원을 동원해 SK 주식을 매입했었다.
물론 이 구도 속에서 KT를 갑,삼성을 을로 간단히 구분할 수는 없다는 게 업계의 냉정한 평가다. KT가 국내 2위 통신사업자이긴 하지만 국내 독보적인 브랜드 파워에 연간 2억대 이상의 휴대폰을 판매하는 삼성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식적인 갑-을 구도로는 전 세계 통신업계에 '왕갑(王甲)'으로 군림하고 있는 애플을 설명할 길이 없다. 역사적으로 어떤 제조사도 애플만큼 막강한 협상력을 보유한 기업은 없었다. KT뿐만 아니라 미국의 AT&T(1위),일본의 소프트뱅크(3위),영국의 O2(2위),독일의 T-모바일(1위),중국의 차이나유니콤(2위) 등 굴지의 기업들이 애플이 요구하는 '스펙'에 거의 근접하게 계약서를 썼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에게 보다 가까이 있어야 갑이 된다는 논리,바로 그 논리의 정점에 애플이 있다"며 "아이폰에 대한 고객들의 강력한 로열티가 통신사들을 을의 자리로 밀어넣은 원천"이라고 평했다.
◆"애플 모델 그대로 베끼지 않겠다"
삼성 LG 팬택의 최고경영자들은 이 같은 애플의 질주를 지켜보면서 복잡한 심사를 갖고 있다. 모 업체 사장은 "애플이 제시한 소프트웨어-콘텐츠 전략의 방향성은 대체로 맞다"면서도 "하지만 지난 수십년간에 걸쳐 축적한 애플의 역량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힘들고,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애플의 비즈니스모델을 그대로 베끼는 형태로는 애플을 극복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또 다른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여러 복안들을 갖고 있지만 지금 뭐라고 딱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다"며 "애플리케이션이 중요하지만 스마트폰을 시장별 특성에 맞게 튜닝하고 판매망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사업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서 오랜 세월 야전을 누벼온 경영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있었다. "넉넉 잡고 6개월만 지켜봐달라"는 것.말 많은 한국 정치만큼이나 훈수의 성찬에 노출된 휴대폰 경영자들의 고심이 배어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들도 아이폰에 대항할 수 있는 스마트폰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놓기 시작했다. 소비자들 눈에는 다 고만고만한 제품들일지 모르지만 향후 '텐밀러언 셀러'가 잉태되는 과정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욱이 삼성 LG는 올 하반기에 기업역량을 총투입한 전략 폰을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앞으로 6개월 뒤 제조사와 통신사 간 갑-을 관계는 어떤 지형으로 변해 있을까. 애플은 여전히 왕갑으로 군림할 수 있을까.
산업부 차장 jih@hankyung.com
얼마전 만난 모 전자회사 휴대폰담당 Z부사장은 향후 스마트폰 전략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푸념이나 넋두리로 치부하기엔 얄팍한 세평에 대한 불만에 방점이 찍혀있는 듯했다. "밖에서 그 정도니 안에서는 오죽하겠어요. 온갖 회의에 불려다니며 해명 아닌 해명을 하다 보면 진짜 제 일을 하기가 힘들 정도예요. 제발 좀 그만 흔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삼성 "우리 돈으로 아이폰 판촉할 수야"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폰 열풍이 글로벌 시장을 휩쓸면서 삼성전자 LG전자는 물론 회생 조짐을 보이고 있는 팬택마저 1분기 영업이익률이 뚝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이나 LG가 1분기 출하량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실적이 둔화된 것은 누가 봐도 애플 탓이다.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회복세의 과실은 사실상 애플이 독식하는 양상으로 치달았다.
최근 '홍길동론'으로 불거진 삼성전자와 KT의 대립은 한국 휴대폰시장이 얼마나 날카로운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다. "삼성이 제대로 물량을 공급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석채 KT 회장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자 삼성 측도 "국내 제조사에서 나온 돈을 애플의 아이폰 판매 보조금으로 사용하는 마당에 뭔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다. 돈이 적군에 흘러들어가는 '루트'가 빤히 보이는데 예전처럼 대규모 패키지로 '제품+보조금'을 공급할 수는 없다는 것.삼성 관계자는 "KT의 요구는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의 입장을 외면한 것"이라고 말했다.
◆왕갑(王甲) 애플의 석권
이 같은 상황은 급기야 제조사와 통신업계간 '갑(甲)-을(乙)'논쟁까지 야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통신업계는 제조사의 '영원한 갑'으로 불린다. 통신사-대형 딜러-판매점으로 이어지는 공급체인 속에서 소비자들과 가장 넓은 접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말 SK그룹이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을 때 삼성전자 팬택 등의 단말기업체가 백기사로 나선 것도 이 같은 갑-을 관계로 치환할 수 있다. 당시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이 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 측에 'SOS'를 치자 삼성은 즉각 2500억원을 동원해 SK 주식을 매입했었다.
물론 이 구도 속에서 KT를 갑,삼성을 을로 간단히 구분할 수는 없다는 게 업계의 냉정한 평가다. KT가 국내 2위 통신사업자이긴 하지만 국내 독보적인 브랜드 파워에 연간 2억대 이상의 휴대폰을 판매하는 삼성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식적인 갑-을 구도로는 전 세계 통신업계에 '왕갑(王甲)'으로 군림하고 있는 애플을 설명할 길이 없다. 역사적으로 어떤 제조사도 애플만큼 막강한 협상력을 보유한 기업은 없었다. KT뿐만 아니라 미국의 AT&T(1위),일본의 소프트뱅크(3위),영국의 O2(2위),독일의 T-모바일(1위),중국의 차이나유니콤(2위) 등 굴지의 기업들이 애플이 요구하는 '스펙'에 거의 근접하게 계약서를 썼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에게 보다 가까이 있어야 갑이 된다는 논리,바로 그 논리의 정점에 애플이 있다"며 "아이폰에 대한 고객들의 강력한 로열티가 통신사들을 을의 자리로 밀어넣은 원천"이라고 평했다.
◆"애플 모델 그대로 베끼지 않겠다"
삼성 LG 팬택의 최고경영자들은 이 같은 애플의 질주를 지켜보면서 복잡한 심사를 갖고 있다. 모 업체 사장은 "애플이 제시한 소프트웨어-콘텐츠 전략의 방향성은 대체로 맞다"면서도 "하지만 지난 수십년간에 걸쳐 축적한 애플의 역량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힘들고,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애플의 비즈니스모델을 그대로 베끼는 형태로는 애플을 극복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또 다른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여러 복안들을 갖고 있지만 지금 뭐라고 딱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다"며 "애플리케이션이 중요하지만 스마트폰을 시장별 특성에 맞게 튜닝하고 판매망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사업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서 오랜 세월 야전을 누벼온 경영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있었다. "넉넉 잡고 6개월만 지켜봐달라"는 것.말 많은 한국 정치만큼이나 훈수의 성찬에 노출된 휴대폰 경영자들의 고심이 배어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들도 아이폰에 대항할 수 있는 스마트폰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놓기 시작했다. 소비자들 눈에는 다 고만고만한 제품들일지 모르지만 향후 '텐밀러언 셀러'가 잉태되는 과정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욱이 삼성 LG는 올 하반기에 기업역량을 총투입한 전략 폰을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앞으로 6개월 뒤 제조사와 통신사 간 갑-을 관계는 어떤 지형으로 변해 있을까. 애플은 여전히 왕갑으로 군림할 수 있을까.
산업부 차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