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자금 지원 신중에서 추진으로.'

불과 20일 만에 채권단의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5월 초 신규자금 494억원을 받기로 한 월드건설 얘기다. 사실 신용등급 B등급인 성원건설에 이어 A등급인 남양건설마저 법정관리를 신청한 후 월드건설은 '부도 1순위'로 꼽혀왔다. 주택이 핵심사업인 데다 지방 미분양 물량이 많은 까닭이다. 당시 주채권단 관계자들을 취재하면서도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익명의 이 관계자는 은연 중에 월드건설에 대한 원망 아닌 원망을 드러냈다. 그는 "우량 자산을 매각하고 미분양 아파트를 헐값이라도 팔아야 한다"며 "건설사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기업의 희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주채권단뿐아니라 건설업계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일 다시 취재에 들어갔을 때는 채권단의 반응이 달라졌다. 신규 자금을 지원받아 법정관리행을 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월드건설 측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의외였다. 20일 만에 분위기가 이처럼 급반전한 이유는 뭘까. 이는 200여개의 협력업체,채권단,월드건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3자가 힘을 합쳐 조금씩 희생하며 살 길을 모색했기에 법정관리행을 면할 수 있었다.

당초 월드건설이 채권단에 요구한 금액은 900억원에 달했다. 이번에 지원키로 한 신규자금은 400여억원 깎인 494억원이다. 삭감된 금액의 절반은 200여개 협력사들이 아예 받지 않기로 한 돈이다. 가뜩이나 영세한 협력사들의 엄청난 희생이 뒷받침된 셈이다.

월드건설도 인력과 연봉 감축을 약속했다. 또 그동안 팔기를 꺼렸던 알짜 부동산도 과감히 내놓기로 했다. 3개월 동안 월드건설이 자체적으로 매각을 추진하고,안되면 매각권을 채권단에 넘긴다. 채권단도 이런 월드건설과 협력업체들의 노력을 감안해 금리를 5%에서 3%로 낮춰줬다.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월드건설이 무사히 워크아웃을 졸업할 수 있을지,또다시 법정관리 신청 압박에 시달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3자의 희생으로 월드건설과 협력업체의 1만2000여명 직원이 직장을 잃지 않았고,다시 한번 시작할 '희망'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성선화 건설부동산부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