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in FUND] 펀드 가입에만 80분…CMA 들때도 장황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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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로 저축합시다 2부 (3ㆍ끝) 판매규정 개선 시급
투자준칙 획일 적용…절차만 강조, "고객보호 아닌 판매사 보호"
'팔고 나면 그만' 사후관리도 소홀, 직원부터 장기투자 교육 절실
투자준칙 획일 적용…절차만 강조, "고객보호 아닌 판매사 보호"
'팔고 나면 그만' 사후관리도 소홀, 직원부터 장기투자 교육 절실
27일 오전 9시30분 기자는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여의도에 있는 한 증권사 지점에 들렀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가입하고 싶다"고 말하자 직원은 '계좌개설신청서'와 '투자성향파악서'를 내밀었다. 펀드 투자기간과 기대 수익률 등 9가지 문항에 답하자 투자성향이 '위험중립형'으로 판정됐다. 머니마켓펀드(MMF)형 CMA를 고른 후엔 투자설명서 교부와 설명이 이어졌다. 계좌를 개설한 뒤 CMA카드가 나오기까지 1시간이 흘렀다. 여기에 주식형펀드까지 가입하려면 족히 20~30분은 더 걸린다. 주식형펀드 하나 가입하는 데 총 1시간20분이나 소요된다.
◆투자자 보호 vs 판매사 보호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선 펀드상품 판매 절차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입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투자자가 보호받는 게 아니라 '고문'을 당하는 꼴이란 비판이 많기 때문이다. 작년 2월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뒤 표준투자권유준칙을 획일적으로 적용,펀드를 팔 때 각종 서류작성과 설명 절차를 무조건 거치도록 한 결과다.
박종규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사장은 "그나마 펀드시장이 이렇게 위축됐을 때 표준투자권유준칙이 적용된 게 천만다행"이라며 씁쓸해 했다. 펀드 하나 가입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리는 상황에서 2007년처럼 돈이 밀려왔다면 창구는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가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외에도 문제는 많다. CMA나 MMF,국채 · 지방채와 같은 저위험 상품은 고객의 투자성향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다. 그러나 CMA에 가입하기 위해 일단 창구에 앉으면 '투자자 성향 파악' 절차에 따라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고객성향 파악 결과 '공격적투자형'을 제외한 대부분 투자자들은 주식형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비적합상품가입동의서(고객지정상품가입확인서)'를 써야 한다. 확인서는 직원의 권유를 받지 않고 고객이 자신의 책임에 따라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한 펀드 투자자는 "직원 말을 따라 확인서를 쓰다 보면 이건 투자자 보호가 아니라 판매사 보호라는 느낌마저 든다"고 털어놨다.
동의서 작성 후에도 투자자는 50쪽이 넘는 투자설명서의 내용을 들여다봐야 한다. 김태원 삼성증권 컴플라이언스팀 차장은 "간이투자설명서가 있긴 하지만 나중에 불완전 판매(고객에게 상품 성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판매하는 행위) 문제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많은 분량의 투자설명서를 고객에게 보여주면서 설명한다"고 말했다.
특히 신규 투자자는 물론 펀드 투자 경험이 있는 기존 고객까지 이런 장시간의 설명을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지난해부터 투자자 보호 명분으로 제도가 강화됐지만 정작 가입절차만 번거롭게 바뀌었을 뿐이란 얘기다.
◆절차 간소화하고 사후관리 강화해야
상품 위험등급 분류체계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주식형펀드는 원금을 한꺼번에 넣는 거치식이나 매월 납입하는 적립식 모두 '초고위험' 등급 상품으로 분류돼 있다. 이종필 미래에셋증권 마케팅본부장은 "현행 규정은 적립식의 경우 투자 시기를 분산시켜 투자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고객성향은 안정형,안정추구형,위험중립형,적극투자형,공격투자형 등 5가지로 구분한다. 규정 상 위험중립형 아래 등급의 투자자에겐 주식형펀드를 권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펀드 투자의 핵심원리인 장기 · 분산투자를 권장하기보다는 고객의 항의소지를 예방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셈이다.
금융투자협회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방안을 모색 중이다. 최봉환 협회 자율규제본부장은 "상품 위험등급 분류체계를 개편하고 판매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업계의 의견을 듣고 있다"며 "오는 6월께 개정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부 펀드 판매사들이 고객의 이익보다는 계열 운용사의 펀드 밀어주기에 치중하고,팔고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사후관리에 소홀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펀드를 가입할 때뿐 아니라 사후 서비스를 통해 시장상황 변화를 알려주고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진정한 투자자 보호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판매사들이 펀드 판매인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소장은 "고객 상담단계부터 장기 · 분산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고 실제로 장기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업직원에 대한 교육 확대도 필수다. 최상길 제로인 전무는 "영업직원이 제대로 가이드할 수 있도록 교육과 인프라를 갖춰야 하는데 은행 증권사들이 직원 교육을 위한 투자에 인색하다"며 "펀드 판매직원의 교육 현황과 실태 등을 공시하게 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정환/서보미 기자 ceoseo@hankyung.com
◆투자자 보호 vs 판매사 보호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선 펀드상품 판매 절차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입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투자자가 보호받는 게 아니라 '고문'을 당하는 꼴이란 비판이 많기 때문이다. 작년 2월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뒤 표준투자권유준칙을 획일적으로 적용,펀드를 팔 때 각종 서류작성과 설명 절차를 무조건 거치도록 한 결과다.
박종규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사장은 "그나마 펀드시장이 이렇게 위축됐을 때 표준투자권유준칙이 적용된 게 천만다행"이라며 씁쓸해 했다. 펀드 하나 가입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리는 상황에서 2007년처럼 돈이 밀려왔다면 창구는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가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외에도 문제는 많다. CMA나 MMF,국채 · 지방채와 같은 저위험 상품은 고객의 투자성향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다. 그러나 CMA에 가입하기 위해 일단 창구에 앉으면 '투자자 성향 파악' 절차에 따라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고객성향 파악 결과 '공격적투자형'을 제외한 대부분 투자자들은 주식형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비적합상품가입동의서(고객지정상품가입확인서)'를 써야 한다. 확인서는 직원의 권유를 받지 않고 고객이 자신의 책임에 따라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한 펀드 투자자는 "직원 말을 따라 확인서를 쓰다 보면 이건 투자자 보호가 아니라 판매사 보호라는 느낌마저 든다"고 털어놨다.
동의서 작성 후에도 투자자는 50쪽이 넘는 투자설명서의 내용을 들여다봐야 한다. 김태원 삼성증권 컴플라이언스팀 차장은 "간이투자설명서가 있긴 하지만 나중에 불완전 판매(고객에게 상품 성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판매하는 행위) 문제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많은 분량의 투자설명서를 고객에게 보여주면서 설명한다"고 말했다.
특히 신규 투자자는 물론 펀드 투자 경험이 있는 기존 고객까지 이런 장시간의 설명을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지난해부터 투자자 보호 명분으로 제도가 강화됐지만 정작 가입절차만 번거롭게 바뀌었을 뿐이란 얘기다.
◆절차 간소화하고 사후관리 강화해야
상품 위험등급 분류체계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주식형펀드는 원금을 한꺼번에 넣는 거치식이나 매월 납입하는 적립식 모두 '초고위험' 등급 상품으로 분류돼 있다. 이종필 미래에셋증권 마케팅본부장은 "현행 규정은 적립식의 경우 투자 시기를 분산시켜 투자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고객성향은 안정형,안정추구형,위험중립형,적극투자형,공격투자형 등 5가지로 구분한다. 규정 상 위험중립형 아래 등급의 투자자에겐 주식형펀드를 권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펀드 투자의 핵심원리인 장기 · 분산투자를 권장하기보다는 고객의 항의소지를 예방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셈이다.
금융투자협회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방안을 모색 중이다. 최봉환 협회 자율규제본부장은 "상품 위험등급 분류체계를 개편하고 판매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업계의 의견을 듣고 있다"며 "오는 6월께 개정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부 펀드 판매사들이 고객의 이익보다는 계열 운용사의 펀드 밀어주기에 치중하고,팔고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사후관리에 소홀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펀드를 가입할 때뿐 아니라 사후 서비스를 통해 시장상황 변화를 알려주고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진정한 투자자 보호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판매사들이 펀드 판매인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소장은 "고객 상담단계부터 장기 · 분산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고 실제로 장기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업직원에 대한 교육 확대도 필수다. 최상길 제로인 전무는 "영업직원이 제대로 가이드할 수 있도록 교육과 인프라를 갖춰야 하는데 은행 증권사들이 직원 교육을 위한 투자에 인색하다"며 "펀드 판매직원의 교육 현황과 실태 등을 공시하게 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정환/서보미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