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밀레니엄 포럼] "환율, 시장에만 맡겨두면 안돼…국제 자본거래 들여다 볼 필요"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았던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의 투기와 탐욕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정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환율 변동에 따른 충격을 줄여야 하고 감세의 경기활성화 효과가 재정지출보다 더 크다는 소신도 강조했다.

강 위원장은 27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 강연에서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 규모가 4600억달러였던 데 비해 외환시장의 거래 규모는 4조달러였다"며 "투기적 요소가 큰 상황에서 환율을 시장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자본 거래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주장하는 등 자본주의 철학과 원칙이 달라지고 있다"며 "환율도 기존의 상식과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강연에 이어 현 경제 상황과 정부 정책에 대해 포럼 참석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경 밀레니엄 포럼] "환율, 시장에만 맡겨두면 안돼…국제 자본거래 들여다 볼 필요"
▲박원암 홍익대 교수=현 정부 초기의 '747 공약(7% 성장,국민소득 4만달러,7대 경제강국)'을 실현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강 위원장=747의 오리지널은 7대 강국론이다. 형이상학적인 표현 같아서,다음 정부 때까지 얘기하는 것은 주제 넘은 얘기라는 의견이 다수여서 747로 바꿨다. 기업인과 경영학자들은 747공약을 찬성했지만 캠프에 있던 경제학자들은 한두 명 빼고 모두 반대했다. 경영학에서는 비전을 중시하지만 경제학자는 실현 가능성을 얘기했다. 쉽게 실현할 수 있는 목표는 비전이 아니다. 갖고 있는 능력의 120%를 발휘할 때 달성 가능한 목표라야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역량과 의지를 모으기 위한 비전으로는 7대 강국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국가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공기업 부채도 급증하고 있고 가계부채도 무시할 수 없다.

▲강 위원장=우리나라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가 33.8%로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국가부채가 늘어날 수 있는데도 감세 정책을 펼친 배경에는 전략적인 고려가 있다. 2007년 기준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2%로 미국의 18%나 일본의 16%보다 높다. 우리 기업이 선진국 기업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면서 경쟁하게 할 수는 없다.

감세정책과 관련해 안타까운 것은 작년 12월 그레고리 맨큐 교수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썼듯이 '세금을 1달러 깎으면 GDP가 3달러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많은 경제학자들은 케인스가 예전에 '1달러의 감세는 0.99달러의 GDP를 늘린다'는 얘기를 한다. 강만수가 교과서도 모르고 이야기를 한다는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40년 전 수준에서 화석화된 사람들이 최근 논문이나 보고서도 읽지 않으면서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다.

▲김종열 하나금융지주 사장=우리나라는 그간 은행 대형화와 투자은행 육성 등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볼커룰 등 최근 국제 금융계의 방향은 반대로 규모를 제한하고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강 위원장=은행 자산에 세금을 매기고 시장점유율을 제한하겠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철학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증권분야도 투기판만 있지 제대로 된 시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발행시장보다 유통시장이 더 커졌다. 레버리지를 일으켜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선진금융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카지노자본주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최고경영자 자본주의(CEO capitalism)'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CEO가 기업의 오너이자 경영자로 전권을 갖게 되면서 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제너럴모터스(GM),AIG,씨티 등 위기를 겪었던 기업들이 모두 그랬다. 미국에서는 CEO에게 주는 스톡옵션도 폐지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스톡옵션이 일종의 회계사기라고 보는 것이다.

▲서정우 한국회계기준원 원장=환율이 높든 낮든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환율이 큰 폭으로 변동하기 때문이다. 환율의 변동성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 위원장=수출업체는 환율 하락에 대비해 매도 헤지를 하는데 수입업체는 환율 상승에 대비한 헤지를 안 한다. 이 때문에 시장의 불균형이 심하다. 정부가 이를 방치해선 안 된다. 현재 환율제도는 문제가 있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를 포함한 일부 학자들은 통화바스켓제도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기축통화국인)미국은 환율도 없고 외환보유액도 없는 나라다. 미국의 경제학은 우리나라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환율이 1% 오르는 건 수출기업의 외형이 1%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금리가 1% 오르는 건 상장기업에 별 영향이 없다. 환율이 원자폭탄과 같은 효과가 있다면 금리는 재래식 폭탄이나 수류탄과 비슷하다. 금리와 환율은 차원이 다르다.

▲현정택 인하대 교수=과거 여성부에 근무할 때 어린이집을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구청의 말단 공무원이 도장을 안 찍어줘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일선 관청이 갖고 있는 허가권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규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강 위원장=규제는 '별'과 '원'의 관계와 비슷하다. 별을 완전히 둘러싼 원을 그리면 불필요한 부분이 포함되고,최소한으로만 그리면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생긴다. 허가권의 범위는 매년 줄이고 있다. 내년에 규제형평제도가 도입되면 과도한 규제로 손해를 보는 사례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상천 한국기계연구원 원장=국가 정책에서 과학기술을 우선시하고 모든 정책이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이뤄졌으면 한다.

▲강 위원장=정부에서 예산을 세울 때 첫번째로 연구 · 개발(R&D) 예산을 검토한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도 핵심 기술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중국 및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은 어떻게 진행해 나갈 계획인가.

▲강 위원장=신중히 결정해야 할 일이지만 어차피 해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하자는 게 정부 입장이다. 일본에 대해서는 지난번 통화스와프를 맺을 때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걸 느꼈다. 우리가 실제 외화가 모자랐던 것도 아니고 단지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스와프를 하자는 것인데도 선뜻 응해 주지 않았다. 반면 중국은 키 커런시(key currency)로 가기 위한 첫단계로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더니 모든 것이 끝났다. 중국과 협상이 잘 되니까 일본과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한 · 중 · 일 FTA는 견해가 너무 다양하다. 농업이 앞으로 첨단 산업이 된다면 개방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어떻게 차별화할지 전략이 필요하다.

정리=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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