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가 선택한 '철녀'…오은선 '8000m 14좌'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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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산악인 최초 완등
故고미영씨 사진 가슴에 품고
3시간 사투 끝 안나푸르나 올라
故고미영씨 사진 가슴에 품고
3시간 사투 끝 안나푸르나 올라
"국민과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철녀(鐵女)' 오은선 대장(44 · 블랙야크)이 27일(한국시간)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히말라야 8000m급 14개봉 등정의 마지막인 안나푸르나(8091m) 정상에서다. 후배 산악인의 죽음,칸첸중가 등정 의혹 등 그를 둘러싼 각종 논란이 북받쳐 올랐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버스 차창 너머로 어렴풋이 본 북한산 인수봉을 언젠가는 오르겠다고 마음먹었던 그가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고미영씨 사진 품고 13시간 사투
오 대장은 이날 오후 6시16분 북면 버트레스 루트를 통해 무산소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다. 이날 오전 5시 캠프4(7200m)를 출발해 13시간의 사투 끝에 정상을 밟았다. 초속 14~20m의 강한 바람과 영하 30도 가까운 혹한의 추위를 뚫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가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정상을 밟은 오 대장은 이날 캠프4로 내려와 휴식을 취한 뒤 28일 오후 베이스캠프(4200m)에 도착할 예정이다.
14좌 완등은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 이후 세계 스무 번째이며,한국인으로는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대장에 이은 네 번째다. 오 대장은 14좌 중 에베레스트(8848m)와 K2(8611m)를 제외하고 12개 봉에 무산소로 올랐다. 지난달 8일 서울에서 출발한 오 대장은 타르푸출리(5663m)에서 고소적응 훈련을 거친 뒤 지난 4일 안나푸르나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오 대장은 원정대 발대식에서 "겸허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오르겠다"고 말했다. 자연이 허락하지 않을 때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등정에서 지난해 7월 낭가파르밧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다 실족 사고로 숨진 고미영씨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올랐다. 오 대장은 악명 높은 안나푸르나를 함께 오르자는 약속을 마침내 지켰다.
◆산이 좋아 시작한 길 14좌 완등으로
오 대장은 수원대 전자계산학과 1학년 때인 1986년 산악부에 가입하면서 산을 타기 시작했다. 서울시 교육청 공무원으로 일하던 1993년 '에베레스트 원정대' 모집 공고를 보고는 사표를 던졌다. "산이 있었고 그곳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뎠을 따름"이라는 그는 사실상 그때부터 '산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1997년 7월 가셔브롬Ⅱ(8035m)에 오른 이후 2008년부터는 하나의 봉우리 등정을 끝낸 뒤 현지에서 몸을 추스른 뒤 곧바로 다음 등정에 나서는 '연속 등정'에 도전했다. 2008년 마칼루(8463m)에 이어 로체(8516m),지난해 칸첸중가(8586m)와 다울라기리(8167m)를 잇따라 등정했다.
오 대장은 중간 캠프 수를 줄여 3~4일 만에 정상을 밟는 속공을 선호한다. 실력이 비슷한 여자 팀원을 찾기 힘들어 셰르파만 데리고 등정하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그의 등반에는 '무산소''초고속''단독'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다 이루면 또 다른 길이 있을 것"이라며 "짧은 시간에 많은 등반을 한 만큼 휴식을 취하면서 뒤를 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