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캉디드』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캉디드』는 당대 사회의 부패상과 모순을 통렬한 풍자로 날카롭게 비판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이 책은 이름처럼 '순진한' 청년 캉디드(좀더 불어 현지 발음에 가깝게는 깡디드,영어로 솔직한,순진무구한이란 뜻의 'candid')가 겪는 일종의 여행담,모험담을 통해서 당대사회의 치부를 신랄하게 까발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특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융통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정형화된 캐릭터들에 의해 문제점들은 더욱 효과적으로 부각된다.순진한 사람들이 순진한 어투로 전하는 순진하지 않은 현실은 일종의 블랙유머와 함께 사람들의 입가에 쓴웃음을 감돌게 하는 것이다.

특히 작품속 주인공 캉디드가 연모한 여인 퀴네공드가 캉디드와 헤어진 뒤 겪은 일을 전하는 장면도 이같은 효과를 보인다.조금 길지만 퀴네공드의 스토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의 아름다운 성 툰더 텐 크롱크에 불가리아 병사들이 닥쳤습니다.불가리아 병사 한명이 저를 강간하려 덮쳤습니다.저는 닥치는 대로 깨물고 할퀴며 저항했고 그러다 왼쪽 허리에 칼로 상처를 입었습니다.그때 비록 잘생기지도 성격이 좋지도 않았지만 불가리아 대장이 저를 구해서 치료해주고 한동안 데리고 살다가 유태인에게 팔아 넘겼습니다.그 유태인은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을 오가는 장사꾼으로 여자를 매우 좋아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사에 참여하러 가는데 종교재판소 대재판장님이 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저를 유심히 살펴봤습니다.그러더니 저에게 은밀히 상의할게 있다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종교재판장님을 만나니 '숨기고 있는 비밀을 모두 고해하라'고 속삭였고 그분의 관저로 따라갔습니다.그곳에서 저의 고귀한 출생에서부터 지난일을 다 말씀드렸습니다.

얘기를 들은 종교재판장님은 저를 재판장에게 인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궁정의 자금을 대던 유력자였던 유태인은 그같은 종교재판장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습니다.그랬더니 종교재판장은 유태인을 화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겁을 먹은 유태인은 마침내 협상을 개시해 저를 두 사람의 공동 소유로 만들었습니다.일주일중 월,수,토요일은 유태인이 저를 소유하고 다른 요일은 종교재판장이 저를 소유하기로 한 것입니다.이런 계약아래 반년의 세월을 보냈지만 결코 그들 사이에 분쟁과 다툼이 없지 않았습니다.토요일과 일요일이 바뀌는 시점에 신법이 적용될지 구법이 적용될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최고의 사회적 권위를 지닌 종교권력자가 육체적 욕구충족을 위해 사회 관습과 금기를 깨고 한 여인을 유혹하는 장면이 『캉디드』속에서 착하고 청순한 여인 퀴네공드의 입을 통해 여실히 묘사된 것이다.또 세속권력의 실제적인 주인인 금권력을 쥐고 있는 자 역시 똑같은 삶의 형태를 보였고,결국 이들 두 사람은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해 한 여인을 나눠갖기 위한 밀고당기기 작업을 하는 것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묘사됐다.작품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장치로 여인은 한때 잘나가던 가문의 고귀한 혈통이었고 그것이 이들 두 사람에게 잘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그런 것은 이들 두 추악한 권력자들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점도 잘 (그리고 순진한 어조로) 묘사됐다.볼테르는 당시 부패한 종교와 금권정치의 폐해를 비판하기 위해 극단적인 동화적 형태의 풍자를 사용했던 것이다.

최근 검찰의 스폰서 관행이 사회의 도마위에 오르면서 검찰에 대한'성상납'의혹이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때를 같이해 국가인권위에서 여성 연기자 10명중 6명이 재력가나 PD로부터 성접대 제의를 받거나 성추행을 당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이같은 의혹들이 아직 사실이라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 하다.

1759년 발표된 『캉디드』는 당대의 어두운 사회상을 꼬집기 위해 비유와 은유,풍자를 사용했다.오늘날 한국사회는 볼테르가 사용한 풍자와 상징의 내용들이 풍자와 상징의 수준이 아니라 직설적인 설명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서 상황이 250여년전 프랑스보다 더욱 심각한 듯 하다. 이미 우리사회에서 한번 걸러서 돌려 표현하고 비판하는 풍자가 자리할 수 없을 만큼 최소한의 염치·예절·양심이 사라져 버린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사회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참고한 책>
Voltaire, Candide, Bantam Books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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