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시조시인 정완영씨(91)가 60년 시작인생을 담은 시집 《구름 산방》(도서출판 황금알)을 펴냈다.

초정 김상옥씨(1920~2004년)와 함께 현대시조의 외연을 넓혀온 정씨는 고3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라는 시조 '조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발표작과 미발표작 가운데 엄선해 엮은 것.시인은 그 과정을 '쓰고 지우고 했던 고심의 흔적,그 허접쓰레기들을 낙엽처럼 긁어모아 천지간에 분축(焚祝) 드리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분축이란 제사를 지낼 때 축문을 태워 재를 향로에 담는 것.시인은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산과 물의 정경,삶에 대한 소회 등을 3장6구의 시조로 정갈하게 빚어냈다.

'세월도 한 구비만 돌아들면 옛터일까/ 고추장이 쫓던 소년 눈망울에 젖은 구름/ 애호박 닮았던 소녀가 다시 한번 보고 싶다. '('고추장이 쫓던 소년' 전문)

인생의 해질녁에 선 노시인.그러나 눈빛은 소년처럼 빛난다. 모든 인간의 원천이자 문학적 화두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애잔하다. '동산 위에 뜨는 달만 한가위 달이더냐/ 고향 산 산자락에 내려앉아 둥근 저 달/ 어머님 잠드신 봉분도 내 가슴엔 달이더라.'('사모곡(思母曲)' 전문)

특히 '유채꽃이 바다에 들면 바닷물이 꽃밭 되고/ 바닷물이 꽃밭에 오르면 유채밭도 바다일세/ 이 · 저승 따로 없어라 꽃과 물이 한 세상'이라고 노래한 '꽃과 물이 한 세상'에는 현실의 부대낌에서 초연한 삶의 철학이 녹아 있다. 경북 금릉에서 태어난 정씨는 1946년 김천에서 '시문학 구락부'를 발족한 데 이어 이듬해 동인지 '오동(梧桐)'을 출간했다. 국제신보 · 서울신문 · 조선일보 ·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잇달아 당선돼 등단했으며 《채춘집》 《이승의 등불》 등의 시조집을 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