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의 숨겨진 걸작…그리스 비극 '엘렉트라'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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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오페라 '세미라미데' 6월 13~18일 공연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는 '세비야의 이발사'와 '라 체네렌톨라(신데렐라)'로 유명하다. 속필가(速筆家)와 풍자가,낙천가,식도락가로 알려져 있어 희가극에만 어울린다고 속단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수차례 변신을 꾀한 극장의 달인이었다. 단막극으로 이미 10대에 이름을 알렸으며 20대 초반에 오페라 부파(희극적 요소를 강조하는 오페라 장르)로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최고의 인기 작곡가가 됐다. 그런 다음엔 방향을 틀어 진지한 오페라로 다시 극장가를 평정하더니 파리로 옮겨 프랑스 오페라를 몇 편 작곡했고 37세의 한창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모차르트에 필적하는 천재였던 로시니의 오페라 중에 '세미라미데(사진)'와 마지막 작품 '기욤 텔(윌리엄 텔)'은 희가극이 아닌데도 오페라 역사상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다. 다만 워낙 긴 대작인 데다 어려운 노래를 부를 만한 가수를 찾기 힘들어서 공연 기회가 적을 뿐이다.
'세미라미데'가 내달 13~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로시니가 31세에 작곡한 '세미라미데'에는 그의 '전매특허'인 장난기가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특유의 재기는 여기저기 배어있다. 로시니 예찬론자로 알려진 스탕달은 '세미라미데'에 대해 "로시니의 영광은 문명 그 자체의 한계에 의해서만 그 극한이 제한된다"는 찬사를 바쳤다.
제목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전설적인 왕비 이름이다. 신화에서는 여장부로 남편을 잃고 자식에게 죽임을 당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는데,이 공연의 원작인 볼테르 작품은 그리스 비극의 '엘렉트라'를 연상시킨다.
세미라미데(소프라노)는 자신이 폐위될 것이라는 정부(情夫) 앗수르(베이스)의 말을 듣고 남편을 독살한다. 이후 직접 나라를 통치하던 세미라미데는 젊은 장군 아르사체(알토)에게 반한다. 그와 결혼해 왕위를 넘기려고 했지만 앗수르가 이에 반발하고,아르사체는 다른 왕녀를 사랑한다. 더욱이 아르사체가 변란 중 실종됐던 세미라미데의 아들임이 밝혀진다. 어머니에게 복수하라는 대(大)제사장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르사체는 앗수르와 결투하기 위해 부왕의 무덤으로 향하는데,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내리친 칼이 그만 세미라미데를 향하고 만다.
친족살해라는 불편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원작은 고전 비극의 품격을 한껏 갖춰 장중하다. 이 때문에 로시니는 바로크 시대의 옛 양식인 오페라 세리아,즉 신화적인 묵직한 내용을 여러 주역급 가수의 연속적 아리아로 풀어내는 가수 중심 오페라로 만들었다. 여성 성악가인 알토가 바지를 입고 아르사체 역을 불러 바로크 시대의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성악가) 전통을 대신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정형화된 패턴의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도 풍부하다. 로시니가 직접 도입한 이중구조 아리아 양식에 따라 서정적인 카바티나(아리아보다 양식이 단순하고 가사의 반복이 없는 독창곡)에 이은 열정적인 카발레타(형식이 쉽고 간결한 짧은 노래)를 활용하는가 하면,중요한 순간마다 이중창을 풍부하게 삽입했다.
빼어난 서곡을 포함해 오케스트라의 역할도 이전보다 커졌다. 게다가 망령의 등장,편지 읽는 장면,앗수르의 광란,어둠 속의 결투 등도 후대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연출을 맡은 이탈리아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는 매년 여름 로시니의 고향 페사로에서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지난 30년간 가장 많은 오페라를 연출했다. 그래서 로시니를 가장 잘 이해하는 대가로 꼽힌다. 베네치아의 유서 깊은 오페라 극장이며 '세미라미데'가 초연된 라 페니체 극장을 대표하는 연출가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라 페니체 극장과 로마 오페라극장에서 쓰던 무대,의상,소품 일체를 공수해온다. 피치는 '세미라미데'를 오페라 세리아의 역사를 완결하는 명작으로 보고 엄격한 정통성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구현하고 있다.
세미라미데,아르사체,앗수르 등 세 주역은 유럽에서 초청된다. 스페인의 젊은 대가로 불리는 마리올라 칸타레로(세미라미데),루마니아의 세계적 메조소프라노 카르멘 오프라사누(아르사체)가 얼마나 로시니 스타일의 묘미를 잘 살려낼지 큰 관심사다.
유형종 < 무지크바움 대표 · 음악칼럼니스트 >
그러나 그는 수차례 변신을 꾀한 극장의 달인이었다. 단막극으로 이미 10대에 이름을 알렸으며 20대 초반에 오페라 부파(희극적 요소를 강조하는 오페라 장르)로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최고의 인기 작곡가가 됐다. 그런 다음엔 방향을 틀어 진지한 오페라로 다시 극장가를 평정하더니 파리로 옮겨 프랑스 오페라를 몇 편 작곡했고 37세의 한창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모차르트에 필적하는 천재였던 로시니의 오페라 중에 '세미라미데(사진)'와 마지막 작품 '기욤 텔(윌리엄 텔)'은 희가극이 아닌데도 오페라 역사상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다. 다만 워낙 긴 대작인 데다 어려운 노래를 부를 만한 가수를 찾기 힘들어서 공연 기회가 적을 뿐이다.
'세미라미데'가 내달 13~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로시니가 31세에 작곡한 '세미라미데'에는 그의 '전매특허'인 장난기가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특유의 재기는 여기저기 배어있다. 로시니 예찬론자로 알려진 스탕달은 '세미라미데'에 대해 "로시니의 영광은 문명 그 자체의 한계에 의해서만 그 극한이 제한된다"는 찬사를 바쳤다.
제목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전설적인 왕비 이름이다. 신화에서는 여장부로 남편을 잃고 자식에게 죽임을 당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는데,이 공연의 원작인 볼테르 작품은 그리스 비극의 '엘렉트라'를 연상시킨다.
세미라미데(소프라노)는 자신이 폐위될 것이라는 정부(情夫) 앗수르(베이스)의 말을 듣고 남편을 독살한다. 이후 직접 나라를 통치하던 세미라미데는 젊은 장군 아르사체(알토)에게 반한다. 그와 결혼해 왕위를 넘기려고 했지만 앗수르가 이에 반발하고,아르사체는 다른 왕녀를 사랑한다. 더욱이 아르사체가 변란 중 실종됐던 세미라미데의 아들임이 밝혀진다. 어머니에게 복수하라는 대(大)제사장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르사체는 앗수르와 결투하기 위해 부왕의 무덤으로 향하는데,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내리친 칼이 그만 세미라미데를 향하고 만다.
친족살해라는 불편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원작은 고전 비극의 품격을 한껏 갖춰 장중하다. 이 때문에 로시니는 바로크 시대의 옛 양식인 오페라 세리아,즉 신화적인 묵직한 내용을 여러 주역급 가수의 연속적 아리아로 풀어내는 가수 중심 오페라로 만들었다. 여성 성악가인 알토가 바지를 입고 아르사체 역을 불러 바로크 시대의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성악가) 전통을 대신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정형화된 패턴의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도 풍부하다. 로시니가 직접 도입한 이중구조 아리아 양식에 따라 서정적인 카바티나(아리아보다 양식이 단순하고 가사의 반복이 없는 독창곡)에 이은 열정적인 카발레타(형식이 쉽고 간결한 짧은 노래)를 활용하는가 하면,중요한 순간마다 이중창을 풍부하게 삽입했다.
빼어난 서곡을 포함해 오케스트라의 역할도 이전보다 커졌다. 게다가 망령의 등장,편지 읽는 장면,앗수르의 광란,어둠 속의 결투 등도 후대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연출을 맡은 이탈리아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는 매년 여름 로시니의 고향 페사로에서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지난 30년간 가장 많은 오페라를 연출했다. 그래서 로시니를 가장 잘 이해하는 대가로 꼽힌다. 베네치아의 유서 깊은 오페라 극장이며 '세미라미데'가 초연된 라 페니체 극장을 대표하는 연출가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라 페니체 극장과 로마 오페라극장에서 쓰던 무대,의상,소품 일체를 공수해온다. 피치는 '세미라미데'를 오페라 세리아의 역사를 완결하는 명작으로 보고 엄격한 정통성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구현하고 있다.
세미라미데,아르사체,앗수르 등 세 주역은 유럽에서 초청된다. 스페인의 젊은 대가로 불리는 마리올라 칸타레로(세미라미데),루마니아의 세계적 메조소프라노 카르멘 오프라사누(아르사체)가 얼마나 로시니 스타일의 묘미를 잘 살려낼지 큰 관심사다.
유형종 < 무지크바움 대표 · 음악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