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 · 현대 시인 30여명의 대표작과 해설을 엮은 시선집이 시리즈로 출간된다.

출판사 휴먼앤북스는 30권짜리 '한국대표시인 시선' 시리즈 중 1~3권을 먼저 내놨다. 황동규 김명인 황지우씨의 대표시 70여편을 소개하고 문학평론가 이숭원 이경수 홍용희씨의 해설을 각각 붙였다.

1권을 장식한 황동규씨(72)는 195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한국 현대 서정시의 대표주자.황순원 선생의 아들이자 소설가 황시내씨의 아버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황씨의 시선집 《삶을 살아낸다는 건》에는 우울과 적막 속에서 자아와 진실을 찾아나서는 초기작부터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저항과 성찰,죽음과 삶의 명상을 다룬 근작까지 실려 있다. 영화 '편지'에서 최진실이 애절한 내레이션으로 소개해 눈물샘을 자극한 시 '즐거운 편지'는 그의 초기 작품.'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사소함'이란 시어가 영구의 기다림으로 이어질 듯한 '즐거운 편지'의 어법은 전통 연애시의 상투성을 깨뜨리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오미자술''몰운대행' 등에서 보여준 '극서정시'라는 개념은 마치 드라마와 같이 한 편의 시에서 인간의 정신과 행동이 변해가는 과정과 닮았다. 문학평론가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는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자신의 관념을 체험으로 용해시키는 육화의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고 평가했다.

14년간 70편의 시로 완결한 '풍장(風葬)' 연작시는 현대시사에 한 획을 긋는 성취로 꼽힌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火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풍장1' 부분)

'풍장'은 사람이 죽은 후 시신을 땅에 매장하거나 태우지 않고 작은 초막에 짚으로 덮어 둬 비 바람에 소멸하도록 한 장례법.삶과 죽음을 구분짓지 않고 자연 속에서 포용하는 시인의 깨달음을 전해준다.

황씨는 14권의 시집을 통해 초기에는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씨 등의 연시와 다른 현대적인 연애시를 창조했고 1960~70년대에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을 서정의 양식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숭원 교수는 "1970년대 후반 도입한 극서정시의 개념,'풍장' 시리즈,2000년 이후 보여준 서구적 방법론과 동양적 사유의 결합,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몸 전체의 감각으로 표출하고자 한 시도 등은 다면적인 창조의 길을 걸어 온 시인의 인생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명인씨(64)의 《아버지의 고기잡이》,황지우씨(58)의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도 깊은 사색과 성찰의 결실들이다. 출판사는 앞으로 김소월 정지용 백석 이용악 김춘수 김수영 김종삼 박재삼씨 등 작고 시인과 생존 시인 3명씩의 시선집을 번갈아 선보일 예정이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