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혹독한 구조조정과 감산에 시달렸던 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투자를 속속 재개하고 있다. 삼성뿐만 아니라 하이닉스반도체 도시바 엘피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도 반도체 호황국면을 맞아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 주요 업체들의 투자계획을 모두 합해도 삼성전자의 단일 투자금액에는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삼성, 반도체 19조 투자] 경쟁사들도 투자는 하는데…

◆하이닉스 신규팹 건설 나설 수도

경쟁사들은 삼성이 자신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할 경우 상당히 곤혹스런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모처럼 찾아온 호황국면을 즐길 틈도 없이 또 다시 증설 경쟁에 나서야할지,아니면 시장의 초과수익을 모조리 삼성 측에 내줘야할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삼성의 결단이 다른 업체들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를 안겨다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올해 2조3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인 하이닉스는 아직 내년 투자계획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삼성의 대규모 투자가 현실화될 경우 신규라인 건설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까지 12조원 안팎의 현금흐름 창출이 가능해 하나 정도의 신규 팹을 건설할 수 있는 여력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1위 기업인 삼성을 무작정 추종할 수는 없다는 판단 아래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닉스는 다만 내년 투자규모는 올해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삼성에 이어 세계2위의 낸드플래시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도시바는 올 상반기 미에현 요카이치시에 위치한 공장에 최대 1000억엔을 투자해 신규 라인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라인을 새로 건설하는 것은 2007년 이후 3년 만이다. 이 경우 메모리 생산능력은 월 26만장에서 36만장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삼성 하이닉스에 이어 D램 3위업체인 일본 엘피다도 히로시마현에 위치한 히가시히로시마 생산공장을 대상으로 내년 중 600억엔을 투자해 65나노급 D램 생산라인을 45나노급으로 전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품은 삼성이나 하이닉스보다 늦게 양산에 들어가긴 하지만 기존 엘피다 제품에 비해 데이터 전송속도가 빠르고 전력 소모량도 적어 수익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삼성에 정면 대응 어려울 듯

또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지난 2월 삼성전자 도시바와의 경쟁구도 진입을 선언하며 유럽계 플래시메모리 전문기업인 뉴모닉스를 12억7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전체 반도체 업계 1위인 인텔도 마이크론과 손잡고 20나노급 낸드플래시 기술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등 메모리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 불황여파의 직격탄을 맞았던 대만의 파워칩 프로모스 난야테크놀로지 등도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파워칩은 55억대만달러 규모의 투자자금을 최근 유치한 데 이어 올해부터는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때 파산위기에 몰렸던 프로모스도 지난해부터 일본 엘피다에 D램생산을 위탁하는 등 실지 회복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내년까지 삼성의 투자금액을 180억달러로 환산했을때 투자규모 2위는 자본제휴 관계에 있는 도시바와 샌디스크의 낸드플래시 투자로, 총 59억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하이닉스는 43억달러,난야와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합작법인인 이노테라의 투자규모는 26억달러에 각각 머물 전망이다.

결국 삼성전자의 공격적 투자가 경쟁사들의 불꽃 튀는 응전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실제 대부분 업체들이 적자를 이제 막 벗어난 데다 삼성의 가격 장악력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도 마땅치 않아 당분간 시장 추이를 관망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