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기조의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켜지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신중론을 펴고 있지만 경기 회복 속도, 시중의 과잉 유동성, 자산가격의 거품(버블)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선제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정책적 고려를 중시하는 정부가 사실상 통화정책 주도권을 쥐었다는 시각이 많은 가운데 한국은행이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좌고우면하다가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저금리 부작용 경고음은 커지는데

기준금리의 조기 인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국내외에서 모두 불거지고 있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의 성장세를 볼 때 가까운 시일 안에 금리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연구원 역시 금리 인상 시점을 앞당길 것을 주문했다.

올해 한은이 제시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5.2%로 종전보다 0.6%포인트 높인 수준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올해 5% 이상의 성장은 무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지난 3월 광공업생산은 작년 동월보다 22.1% 늘어났고 1분기에는 25.6% 증가해 2000년 1분기(27.1%)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은이 집계한 1분기 성장률(속보치)은 작년 동기 대비 7.8%이다.

한은은 우리 경제가 국제 금융위기 여파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성장 궤도에 들어섰다고 판단했고 기획재정부 또한 경기 회복세가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한은이 3월 경제지표를 반영해 6월 발표하는 잠정치에서 1분기 성장률을 8%로 상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상 최저 수준인 연 2.00%의 기준금리는 비정상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저금리로 시중자금이 마땅한 운용처를 못 찾고 짧은 시간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에 몰리고 있다.

작년 말 현재 단기금융상품의 수신 잔액은 755조원으로 국제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9월보다 77조원 불어났다.

시중의 초과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한 한은의 통화안정증권 순발행액은 지난 3월 10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더욱이 경기 회복이 빠른 한국에 투자하는 해외 자금의 유입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한은이 이자 지급 부담이 커지는 통화안정증권 발행으로 과잉 유동성을 조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3월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일부 위원은 "저금리가 오래 지속될 경우 구조조정 지연, 멀지 않은 장래의 물가상승 압력 증대, 자산가격 오름세 확대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지난달 29일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을 높게 평가하면서 "금리 인상 시기를 놓치면 주식시장 버블이 발생한 2003년, 2007년의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민 깊어지는 김중수 총재, 그의 선택은

정부는 아직 신중 모드이다.

윤증현 장관은 지난달 28일 "경기 회복세가 강화되고 있다"면서도 "국제금융시장에 불안요소가 있고 원자재 가격 상승 우려, 국내 고용, 대내외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당분간 현재의 거시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또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은 "위기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위기를 대비한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고 주문했고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는 "출구전략을 장담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윤 장관은 "저금리로 빚어진 과잉 유동성 때문에 금융위기가 생겼는데 다시 한번 저금리로 이 사태를 수습하고 있어 위기를 다시 잉태하고 있다"(4월25일), "(금리 인상은) 타이밍(시기)을 놓치면 안 된다"(4월26일)고 말했다.

금리 인상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지만 원론적인 차원의 발언이라는 게 윤 장관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청와대의 부정적 시각에 한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기준금리 조기 인상론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여당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한나라당 김성조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0일 "금리 인상은 여러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최소한 올해 2분기가 지나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국내외적으로 출구 시점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금융당국에서도 금리 인상 시기가 임박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으나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6.2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으로서는 금리 인상이 거론되는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정부와 여당에서 금리 문제를 계속 언급함에 따라 금통위와 김중수 총재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시각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지난달 29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저금리 기조의 부작용을 우려하면서도 "금융완화 조치의 정상화는 국제적 논의 및 국내외 금융.경제상황의 개선 추이를 보면서 속도와 폭을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향후 금리 인상의 필요성은 있지만 그 시기와 인상 폭은 여전히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출구전략의 국제 공조가 사실상 폐기됐는데도 한은이 국제적 논의를 지켜봐야 한다고 다시 언급한 것이 적절한지도 논란거리다.

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도 금리수준이 여전히 2% 초반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통화완화 정책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금융연구원 장민 거시경제실장은 "소비와 설비투자가 모두 좋아지는데 한은이 민간 자생력 회복을 기준금리 인상의 전제 조건으로 거론하는 것은 출구전략의 시기상조론을 뒷받침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 실장은 "6월부터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올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이달 금통위에서 미리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연구위원은 "1분기 경제 실적을 보면 출구전략을 단행해야 하는 이유가 많아졌다"며 "하지만 남유럽의 재정 위기가 확산하고 있고 대부분 가계부채가 부동산에 물려 있다는 점에서 금리를 올리면 부담이 커지는 등 불안 요소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는 12일 열리는 금통위가 통화정책 방향을 어떻게 결정하고 김중수 총재가 시장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주목된다.

김 총재가 저금리 폐해에 대한 한은 안팎의 지적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정부 `코드'에 계속 맞출 경우 통화정책의 주도권을 정부에 넘겨줬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홍정규 기자 kms1234@yna.co.kr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