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권종열 '뱅뱅어패럴' 회장 "길 막혔는데 돌진하면 바보짓…뱅뱅, 돌아갔더니 다른 길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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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청바지의 부활…가격 낮춰 중저가 변신 '박리다매'
도로 이름도 바꾼 '뱅뱅'…첫 세일땐 줄 100m 넘어 경찰동원
영캐주얼 매장 찾는 할아버지…매주 경쟁사 원단·디자인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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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교복 자율화' 조치가 실시되자 중 · 고교생들은 면 티셔츠와 청바지를 새로운 교복으로 받아들였다. 상표 없는 청바지가 대세였던 시절 '뱅뱅어패럴'은 미국 브랜드인 '죠다쉬'와 함께 2만~3만원대 프리미엄 청바지 시장을 열었다. 소년들은 뱅뱅의 '소 대가리' 로고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부모를 졸랐고,부모는 행여 아이들의 기가 죽을까봐 생활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뱅뱅 청바지를 사줬다.
뱅뱅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게스,캘빈클라인,마리떼프랑소와저버 등 해외 유명 브랜드에 이어 닉스,스톰,잠뱅이 등 국내 브랜드까지 가세하자 뱅뱅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2000억원에 육박하던 매출은 10년 사이에 700억원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300개에 달하던 점포 수도 100여개로 쪼그라들었다.
창업주이자 최고경영자(CEO)인 권종열 회장(77)의 선택은 '철저한 변신'이었다. 프리미엄 브랜드와의 경쟁을 포기하고,뱅뱅을 중 · 저가 브랜드로 전환한 것.판매가를 절반 이하로 낮추는 동시에 판매채널을 백화점에서 홈쇼핑과 가두점으로 바꿨다. 그러기를 10년.뱅뱅은 지난해 1850억원의 매출(판매액 기준)을 올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2000억원으로 잡았다.
'뱅뱅 부활 스토리'의 주인공을 만난 것은 지난달 29일이었다. 창문 너머로 '뱅뱅사거리'라고 쓰인 초록색 교통표지판이 보이는 서울 도곡동 뱅뱅어패럴 본사 회장실에서였다. 그에게 "패션업체는 한 번 고꾸라지면 회복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살아난 거냐"고 물었더니 "길이 막혔기에 돌아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뱅뱅사거리 표지판을 가리키며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저걸 보면서 '지금 무너지면 뱅뱅뿐 아니라 뱅뱅사거리란 도로명도 없어진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일했다"며 웃었다.
▼뱅뱅이 완전히 살아난 것 같습니다. 성장세만 보면 '제2의 전성기'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데요.
"일단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난 것만은 분명합니다. 홈쇼핑 덕을 많이 봤어요. 2004년 40억원 수준이던 홈쇼핑 매출이 매년 두 배씩 뛰더니 작년엔 437억원까지 오르더군요. 가두점과 대형마트 매출도 늘고 있고….지난해 판매한 뱅뱅 청바지가 200만장이 넘습니다. 지난 겨울 상품을 해당 시즌에 소화한 비율이 85%에 달합니다. 대개 75%가 넘으면 '잘했다'는 소리를 듣거든요. "
▼뱅뱅의 부활 비결은 '변신' 덕분이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때(1990년대 말)는 프리미엄 브랜드로는 승산이 없었어요. 길이 막혔는데도 밀고 들어가는 것은 바보짓 아닙니까. 막히면 돌아가야죠.이왕 변신할 거면 확실하게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박리다매' 전략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가격도 절반으로 낮추고,판매 채널도 백화점에서 대형마트 가두점 홈쇼핑으로 바꿨어요. 그랬더니 학창 시절 뱅뱅을 즐겨 입었던 30대 이상 고객들이 '뱅뱅을 이렇게 싸게 팔아?'라고 생각하면서 몇 벌씩 사가더군요. 홈쇼핑에서는 청바지 3벌을 7만9900원에 판매해요. 20여년 전 가격으로 되돌아간 셈이죠.그때 그렇게 과감하게 변신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죠다쉬처럼 사라졌을 것입니다. "
▼회장님은 1961년부터 동대문에서 대규모 청바지 도매 제조업을 하다 1983년께 뱅뱅이란 이름을 앞세워 소매업에 뛰어든 것으로 압니다. 첫 번째 변신 아닙니까.
"맞습니다. 1982년까지 뱅뱅은 바지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도매업체였어요. 재단사 700여명을 두고 엄청나게 찍어냈죠.당시 한국에서 팔린 청바지의 70~80%는 제가 만든 거였어요. 그런데 교복이 자율화로 바뀌니까 당시 반도상사가 죠다쉬란 브랜드를 미국에서 들여왔습니다. 제가 만든 청바지가 도매시장에서 2000~4000원에 팔렸는데,죠다쉬는 2만4000원을 받더군요. 그런데도 불티나게 팔리는 거예요. '어,이거 봐라.이렇게 비싸게 받아도 팔리네'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있겠어요? 그 길로 1970년 제가 도매 제조를 하면서 만든 브랜드인 뱅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소매업으로 전환했습니다.
광고비를 마련하려고 제2금융권에서 8억원이나 대출받았어요. 덕분에 당시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던 가수 전영록을 광고모델로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의류업에 뛰어든 게 올해로 50년째 접어들었고,뱅뱅 브랜드가 나온지도 40년이 됐네요. "
▼1980년대엔 뱅뱅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하던데요.
"정말 끝내줬지요. 뱅뱅은 한동안 '노 세일' 브랜드였습니다. 워낙 잘 팔렸거든요. 그러다 1987년에 처음으로 30% 세일을 했더니 아주 난리가 났어요. 뱅뱅사거리 일대 교통이 꽉 막혀서 교통경찰이 급파될 정도였으니까요. 매장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줄이 족히 100m는 됐을 것입니다. "
▼요즘도 회사 업무를 A부터 Z까지 다 챙긴다고 들었습니다.
"뱅뱅어패럴에는 사장이나 부사장이 없어요. 각 부서장이 제게 직접 결재를 받으러 옵니다. 오전 8시 회사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모델별 일일 판매 현황'부터 훑습니다. 그리고 오후 7시까지 영업 디자인 매장관리 등 일상적인 업무를 하죠.일주일에 두 번은 여주물류센터를 방문해 재고 현황을 디자인별로 체크합니다. 여주에 들렀다가 집에 오면 항상 자정 무렵이에요. 중국에는 보름마다 갑니다. 한 번 가면 공장에 들러 생산 현황을 점검하고,인근 원단업체들을 찾아 발주 계약도 맺죠.그나마 일이 재미있으니까 버티지,재미를 못 느끼면 내 나이에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
▼디자인도 직접 챙기신다고요? 그건 젊은 사람들 몫인데.
"저는 훌륭한 조언자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주말마다 폴햄 베이직하우스 등 경쟁 업체 매장을 들러요. 손님인 척하고 들어가서 이 옷,저 옷 만져보고 디자인도 쭉 훑어봅니다. 제가 원단을 만진 것만 50년이에요. 한 번 딱 만지면 이 원단이 면인지,폴리에스터인지,만약 면이라면 10수인지,20수인지 견적이 나옵니다. 그런데 제가 매장에 들어가면 '할아버지가 영 캐주얼 매장에 들어왔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해요. 허허."
▼'왕 체력'이시네요. 현역 최고령 패션업체 CEO인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채식 위주로 조금만 먹습니다. 밥 먹는 양이 (종이컵을 들어 보이면서) 이만큼도 안돼요. 운동은 주로 걷기로 대신 합니다. 원래 술은 가끔 했는데,2년 전에 협심증 수술을 받은 뒤론 거의 끊었어요. 6시간짜리 대수술이었거든요. " 이 대목에서 김영조 홍보팀장이 끼어들었다. 김 팀장은 "당시 수술이 끝나고 이틀쯤 지난 뒤에 병문안을 갔었다"며 "그때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회사 서류를 결재하는 회장님의 모습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고 말했다.
▼패션 트렌드는 어떻게 변할 것 같습니까.
"명품이 대세인 것처럼 떠들썩하더니 이제는 '패스트 패션'이 확실히 자리잡은 것 같아요. 비싼 옷 한 벌 사느니 저렴한 옷 2~3벌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요즘 젊은 친구들은 싫증을 잘 내잖아요. 앞으로도 중 · 저가 브랜드 시장은 더 커질 것입니다. "
▼앞으로 뱅뱅을 어떤 브랜드로 키우고 싶으세요.
"제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게 위기 때 10~20대 소비자를 놓친 것입니다. 현재 뱅뱅의 주고객은 30~40대거든요. 뱅뱅이 광고 모델로 탤런트 이민호를 쓰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10~20대가 열광하는 프리미엄 청바지 시장에도 다시 도전할 것입니다. 이미 디자인팀에 '한 벌당 10만원이 넘는 최고급 청바지를 개발하라'고 얘기해 놓았습니다. 뱅뱅과는 다른 별도 브랜드로 주로 백화점에서 판매할 계획이에요. 이렇게 해서 10~20대를 다시 끌어들여 4~5년 내에 뱅뱅 매출을 4000억원 규모로 끌어올릴 것입니다. 은퇴는 그 이후에나 생각해야죠."
▼후계구도는 생각해 놓으셨나요.
"아들이 셋이에요. 첫째는 리틀뱅뱅 오모로이 등 아동복 브랜드를 운영하고,둘째는 UGIZ 크럭스 등 이지 캐주얼 브랜드 업체를 이끌고 있어요. 셋째는 에드윈을 맡고 있죠.일부는 제가 키운 브랜드를 물려준 것이고,일부는 자기들이 스스로 세운 브랜드입니다. 어떤 브랜드는 뱅뱅과 타깃 고객이 일치하는 만큼 아들들도 경쟁자죠.뱅뱅의 CEO 자리는,글쎄….셋 중 가장 잘 하는 아들에게 물려줄까 하는데,괜찮은 생각이죠?"
오상헌/강유현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