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쇼크' 이후 깊은 수렁에 빠졌던 일본 경제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되살아날 조짐이다. 주요 기업 3분의 1 이상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이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중국 등 신흥국의 급속한 경기회복에 힘입어 전자회사 등은 4월 말에서 5월 초에 걸친 '골든 위크' 연휴도 반납한 채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

일본 상장사 1765개사 중 33%에 해당하는 580개사의 2009회계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 순이익이 리먼브러더스 파산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회계연도(2007년 4월~2008년 3월) 수준을 웃돈 것으로 집계됐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일 보도했다.

니혼제지는 지난 3월 말 결산에서 300억엔(약 3600억원)의 순이익을 내 2007회계연도의 5배를 넘었다. 컴퓨터용 하드디스크구동장치(HDD) 주력 생산업체인 일본전산은 2007년 수준을 뛰어 넘어 사상 최대인 519억엔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동통신회사인 NTT도코모도 4947억엔의 순이익을 내 리먼 쇼크 이전을 회복했다.

일본의 주요 상장기업들은 2007회계연도에 사상 최대 순이익을 기록했었다. 그러나 2008회계연도에 금융위기에 따른 세계 경기악화로 순이익이 급감했다가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업종별로는 자동차 · 전자 업체들의 회복 조짐이 뚜렷하다. 자동차업계가 지난달 말 발표한 세계 생산대수 집계에 따르면 도요타 등 4개사가 전년도 감소세에서 2009회계연도에는 증가세로 전환했다. 지난 3월 일본 자동차 8개사의 생산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70% 늘어난 208만9135대를 기록했다. 중국에서는 도요타가 전년 대비 46.9% 늘어난 72만대, 혼다는 28.1% 늘어난 65만대를 생산했다.

파나소닉과 소니 샤프 히타치 등 전자 4사는 올해 전 세계 평판TV 출하 목표를 지난해보다 50% 늘어난 7500만대로 잡았다. 신흥국 수요 확대에 대응해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공장들이 바빠졌다. TV · 반도체 생산공장과 자동차 부품 · 소재를 공급하는 업체들은 지난달 29일부터 5월9일까지 이어지는 '골든 위크' 연휴에도 생산라인을 풀가동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생산능력에 대한 생산량 비율을 나타내는 가동률지수(2005년=100 기준)는 지난 2월 90.1로 리먼 쇼크가 일어난 2008년 가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물론 일본 경제가 완전 회복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기업의 최근 실적 회복은 비용절감 등 구조조정의 영향 덕분이란 점에서다. 지난해 이익이 '리먼 쇼크'이전 수준을 웃돈 기업 중에서도 60% 이상은 매출이 줄었다는 게 방증이다.

예컨대 혼다는 1년 전에 비해 이익이 약 2배로 늘긴 했지만 6000억엔 가까운 비용을 절감한 결과다. 철강회사인 JFE홀딩스와 건설기계 회사인 고마쓰도 이익은 정상 수준의 20%에 그쳤다. 회복 속도도 아직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른 게 아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속한 기업들 중 2009년 순이익이 2007년을 넘어선 기업은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일본보다 비중이 더 높다. 게다가 신흥국의 금융긴축 움직임과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 등은 여전히 큰 복병이다.

한편 5월7일 도시바와 파나소닉을 시작으로 11일 도요타자동차 히타치제작소, 12일 엘피다메모리, 13일엔 소니가 2009회계연도 결산실적을 잇따라 발표한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