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산업은행이 미국 정부가 실질적인 주인인 GM을 상대로 국제중재와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라는 강공 카드를 빼들었다. 이로써 GM대우의 장기 생존 방안을 둘러싼 양측의 협상은 사실상 결렬됐다.

앞으로의 사태는 경영주도권을 둘러싼 1대 주주와 2대 주주 간 법적 분쟁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산은 · GM 1년여 협상 무위

산은이 GM을 국제중재재판소로 불러들인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해 10월 말 이뤄진 GM대우 증자 과정의 절차적 하자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경영 참여 통로가 철저히 봉쇄된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산은 관계자는 "당시 증자 이유는 선물환 계약으로 2조7000억원의 손실을 입은 GM대우의 유동성 지원이었지만 증자 규모나 가격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애초 GM이 부담하겠다고 한 증자금액은 2500억원으로 손실금액의 10분의 1 수준이었고 증자가격도 주당 3019원으로 2002년 인수 당시의 가격과 같았다. 산은은 선물환 손실이나 경영 실패 책임을 전혀 지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증자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를 거부했다.

산은은 또 당시 GM이 요청한 1조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 요청에 대해서도 △GM대우 생산 물량의 장기적 보장 △신차 기술 개발에 GM대우 참여와 기존 개발 차량의 라이선스 이전 △최고재무책임자(CFO)로서 산은의 GM대우 경영 참여 등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GM은 이에 대해 오히려 산은이 2002년 인수 당시 합의한 비용분담협정(CSA)을 위배하고 있다며 이를 거부했으며,양측의 지루한 협상은 이후 지금까지 한발짝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CSA 자체가 경영에 대한 참여는 배제된 채 비용만 분담하는 전형적인 불공정 협정으로 개정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쌍용차 매각 실패가 반면교사

산은이 강공으로 방침을 선회한 배경에는 쌍용자동차 매각 실패라는 교훈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산은 주변의 분석이다. 쌍용차는 핵심 기술만 챙긴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인수 4년여 만에 손을 떼자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고 또다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처지다.

GM대우 역시 2002년 GM이 인수한 이후 인수금액의 대부분을 라이선스 지출 등의 명목으로 GM이 모두 회수해갔다.

산은은 증자 이후 지분율이 하락하면서 현재로선 GM대우 경영에 어떠한 견제도 할 수 없는 상태라며 국제법과 국내법상의 절차를 통해 이 같은 불균형을 고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매출의 5%가 훨씬 넘는 금액을 GM본사에 로열티 명목으로 지급하는 등 GM과 GM대우 간 불평등한 계약조항 개정과 함께 차량 판매 이전가격 조사 등을 통해 GM본사에 유리한 이익 배분 조건을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일부에서는 산은이 소송 진행과 함께 현재 1조3000억여원에 달하는 GM대우 여신에 대한 만기 연장 시 일부를 회수하는 등의 방법으로 회사 측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법상 중재절차가 최소 6개월~1년 이상 걸리는 만큼 실질적인 압박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GM대우 생존 전망 불투명 지적도

실제 GM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GM대우의 하도급기지화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GM대우는 2002년 GM에 인수된 후 해외 판매를 전적으로 GM에 의존하고 있다. GM대우는 국내에서 만든 차량에 '시보레'란 엠블럼을 붙여 수출하고 있다. 시보레는 GM 내 자동차 판매량의 47% 이상을 차지하는 GM의 핵심 브랜드다. GM대우 젠트라는 작년 시보레 아베오란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총 29만3000여대가 팔렸다. 해외에서 '대우'는 잊혀진 브랜드다.

GM대우는 내년부터 국내 시장에도 시보레 브랜드를 도입하기로 했다.

GM대우가 신차 개발엔 소홀히 하고 '시보레' 판매에만 신경 쓰면서 내수 시장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이 회사의 국내 판매량은 2007년 13만500여대에서 작년 11만4800여대로 줄었다. 같은 기간 내수 점유율은 10.3%에서 7.9%로 위축됐다.

'GM의 글로벌 경 · 소형차 개발 및 생산기지'를 표방하고 있는 GM대우의 자생력에 의문을 품는 전문가들도 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GM대우가 글로벌 GM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며 "GM대우가 자칫 GM의 단순한 하도급기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심기/조재길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