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유층 인사들이 환치기를 통해 거액을 해외로 빼돌려 필리핀에서 도박을 일삼다 경찰에 적발됐다.

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기경찰청 외사범죄수사대는 이날 학원장과 병원 이사장, 중견기업 대표 등 부유층 인사에게 카지노를 알선하고 불법 도박자금을 대준 알선책 최모(34)씨 등 6명을 도박방조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또 이들 꼬임에 빠져 필리핀 현지 카지노에서 최고 3억원 상당의 바카라 게임을 한 학원장 최모(36)씨, 병원 이사장 박모(60)씨, 공인회계사 연모(50)씨 등 31명을 상습도박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날 적발된 도박 행위자와 알선책 37명을 살펴보면 학원장 2명, 공인회계사 1명, 병원 이사장 1명, 중견기업 대표 9명, 고소득 자영업자 12명이 다수를 차지했고 회사원과 가정주부 각 3명 등도 포함됐다.

거주 지역별로는 서울.경기는 물론 부산 대구 인천 강원 충청 전북 제주 등 전국에 걸쳐 고루 분포됐다.

부유층 인사뿐 아니라 회사원과 가정주부도 6명이나 적발돼 해외 원정도박이 더 이상 일부 부유층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줬다.

도박 알선조직은 총책 김모(46.미검)씨가 운영하는 강원랜드 인근 여행사 대리점이나 인근 전당포를 운영하는 모집책을 통해 항공권과 호텔숙박권을 무료제공하는 등 수법으로 필리핀 현지 카지노를 알선, 도박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했다.

필리핀 현지 카지노 2층에도 사무실을 차려놓고 현지 카지노측과 외국인 고객유치 계약을 맺어 한국인 고객이 30만페소(한화 700만원) 이상 도박하면 골프 부킹, 항공권, 호텔 숙박권, 고급차량 등 VIP급 편의를 고객들에게 제공했다.

도박자금이 떨어지면 자신들의 국내 계좌를 통해 송금.환전토록 하거나 현지에서 직접 현금까지 빌려주며 도박을 하도록 알선했다.

이런 꼬임에 빠진 도박 행위자들은 보통은 3박4일, 길게는 한달 가량 필리핀 현지에 머물며 카지노를 드나들며 도박을 일삼았다.

이들은 카지노를 알선하거나 운영하는 알선업자나 호텔 측의 VIP급 대우에 매료돼 한달이 멀다하고 필리핀으로 건너가 도박에 빠지기도 했다.

지난 2008년 6월부터 2억여원을 도박으로 탕진한 중견기업 대표 전모(52)씨의 경우 최근 2년간 필리핀 방문 횟수가 최고 25회에 달했다.

전씨는 돈을 따기는커녕 가져간 돈을 모두 잃고도 모집책 등을 통해 국내에서 재차 송금을 받은 돈마저 탕진하는 등 죄의식 없이 막대한 외화를 낭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중견기업을 운영했던 나모(56)씨의 경우 최근 2~3년간 국내외 카지노를 전전하며 전 재산 70억원을 탕진하고 부인과 이혼, 중국음식점 종업원으로 전락하는 등 `인생막장' 살고 있다며 '도박 중독'의 무서움을 경고했다.

경찰은 필리핀 현지로 달아난 도박 알선총책 김씨 등 3명의 검거를 위해 현지 경찰에 공조수사를 요청하는 한편 조사과정에서 필리핀 카지노에 출입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것으로 확인돼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한경닷컴 경제팀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