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감독 '하녀'ㆍ'화녀'ㆍ'화녀 82' 3부작 주목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12일 개막하는 제63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원작인 고(故) 김기영(1919~1998) 감독의 '하녀'(1960)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원작인 '하녀'는 아내가 있는 중산층 남자(김진규)가 젊은 하녀(이은심)의 유혹을 받아 관계를 맺고 난 뒤 일어나는 비극을 그렸다.

김기영 감독은 실제로 일어난 살인 사건에서 소재를 찾았다.

이 영화는 음산하게 깔리는 음악과 천둥소리,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쥐약 등으로 긴박감을 준다.

하녀가 임신하자 여주인(주증녀)은 하녀를 설득해 낙태하게 하고, 아기를 잃은 하녀는 점점 난폭해진다.

하녀의 협박 때문에 여주인은 남편을 하녀의 침실로 보낸다.

남편과 하녀는 결국 쥐약을 먹고 숨을 거둔다.

엄앵란이 조연으로 출연했고 안성기가 아역으로 나와 눈길을 끈다.

임상수 감독 이전에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한 감독은 없었지만, 김 감독은 스스로 자신의 영화를 11년 간격으로 두 차례 다시 만들었다.

'하녀' 이후 '화녀'(1971)가 나왔고 그 뒤를 '화녀 82'(1982)가 이었다.

'화녀(花女)'는 만취한 주인 남자(남궁원)의 강압으로 성관계한 식모(윤여정)가 아이를 가졌다가 유산하고 나서 남자에 집착하다 함께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주인 여자 역은 전계현이 맡았다.

1971년 당시 23만명을 동원해 그 해 가장 흥행한 영화로 기록됐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 출연한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은 '하녀'와 일치하고 일부 중요한 장면의 대사도 같지만, 설정이 다소 바뀌었다.

11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영화의 주공간인 집은 원작인 '하녀' 때보다 훨씬 넓고 세련돼졌으며 '하녀'가 아니라 '식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화녀'의 식모는, 첫 등장부터 심상찮은 분위기를 뿜어낸 1960년작 '하녀'의 주인공보다는 순진한 시골처녀처럼 보이지만 쥐를 발로 밟아 죽이는 잔인한 면모도 내비치다가 임신과 유산을 겪고 나서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본격적으로 변모한다.

'화녀'가 '하녀'를 변주한 작품이라면 '화녀 82'는 '화녀'와 매우 유사하다.

주인집 남자는 작곡가이고 여주인은 양계장에서 닭을 키워 돈을 벌며, 서울에 막 올라온 시골 처녀가 식모로 들어온다는 설정은 판박이다.

'화녀 82'는 전무송과 김지미가 주인집 남녀 역할을 맡았고 나영희가 식모로 출연했다.

세 편의 영화 모두에서 김기영 감독은 하녀의 방을 2층으로 설정해 1층에 있는 여주인과 대립시키면서 당시 사회상을 담아 중산층 가정의 붕괴를 그려냈다.

'하녀'부터 '화녀 82'에 이르는 '하녀 3부작' 외에 본처와 정부(情婦)가 남자를 공유하는 내용의 '충녀'(1972)와 '충녀'를 리메이크한 '육식동물'(1984)도 김기영 감독의 작품 중에 이와 비슷한 범주로 묶이기도 한다.

조준영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사연구소 팀장은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범접하기 어렵다.

특유의 대사와 미장센이 있어 흉내 내기 어려우며 영화 문법이 워낙 독특하다"면서 "당대 감독들이 리메이크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kimy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