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Expo)로 불리는 세계 박람회는 l851년 런던에서 시작됐다. 당시 영국 연간 생산량의 3분의 1이나 되는 유리로 전면을 덮은 상징 건축물 '수정궁'이 세워져 경탄을 자아냈다. 세계 25개국에서 1만4000여점의 물품을 출품했고,관람객도 600여만명에 달했다. 이후 엑스포는 인류 문명의 새로운 장을 여는 발명품과 신기술을 선보이는 무대로 자리잡게 됐다.

전화 축음기 재봉틀 등 일상생활을 확 바꾼 발명품이 출품된 건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다. 1889년 파리박람회에선 에스컬레이터와 에펠탑이,1915 샌프란시스코 박람회에선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이 화제를 뿌렸다. 아이스크림 콘(1904년 · 루이지애나) TV · 플라스틱 · 나일론(1939 · 뉴욕) 등도 박람회를 통해 데뷔했다.

박람회라는 명칭이 붙은 행사는 많지만 세계박람회기구(BIE)의 공인을 받아야 권위가 인정된다. 공인박람회는 5년마다 한 번씩 6주~6개월간 열리는 등록박람회와 등록박람회 사이 3주~3개월간 개최되는 인정박람회로 나뉜다.

우리가 세계 박람회에 국가전시관을 설치하고 처음 참가한 때는 1893년이다. 미국 시카고 잭슨공원에서 열린 '컬럼비아 세계박람회'에 경복궁 근정전을 본떠 전시관을 세우고 농산물 가공식품,야생작물,의류,도자기,자수 등을 출품했다. 당시 고종은 수행원 2명과 악사 10명을 보내 전통음악 '황풍악(皇風樂)'을 연주토록 하는 등 국제사회에 한국의 존재를 알리려 애썼다. 1993년엔 인정박람회인 대전 엑스포를 개최했다. 등록박람회는 아니었으나 개발도상국이 처음 마련한 공인 박람회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2012년엔 '살아있는 바다,숨쉬는 연안' 주제로 여수에서 또 한번 인정박람회를 연다.

상하이엑스포에 마련된 북한관이 관심을 끌고 있다는 소식이다. 평양 시내 사진과 주체사상탑 모형,고구려 고분벽화를 재현한 모형,북한 소개 책자 등으로 꾸며져 빈약하지만 베일에 싸인 생활상을 엿보려는 관람객이 적지 않다고 한다.

북한이 박람회에 참가한 건 처음이다. 중국과의 특수관계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나왔겠으나 삶에 도움이 되는 물품과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각국이 얼마나 애쓰는가를 보면 얻는 게 적잖을 것이다. 몇 년 전 상하이 푸둥지구에서 '천지개벽'의 놀라움을 나타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마침 중국 방문중이니 짬을 내 한번 둘러보면 어떨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