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적 지위에 있는 공기업들의 잇속 챙기기와 증권회사 간 과열 경쟁으로 인해 금융시장의 덤핑 입찰과 고금리 경쟁이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공기업이 발주하는 기업공개(IPO),블록세일,인수 · 합병(M&A) 등에서 '수수료 제로(0)' 계약까지 등장할 정도다.

3일 금융계에 따르면 공기업 관련 각종 금융거래를 주관하는 증권회사나 회계법인이 받는 수수료가 0.1%에도 못 미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주관회사가 적어도 거래금액의 1.0% 이상을 수수료로 받는 게 일반적인 거래 관행이지만,공기업들이 초저가 입찰경쟁을 부치는 데다 증권사들은 공기업 취급 경력을 쌓기 위해 손해를 무릅쓰고 달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기업 IPO시장에서 수수료 덤핑이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천공항공사,그랜드코리아레저 등의 주관사 선정 때는 사실상 무료나 마찬가지인 0.01%짜리 초저가 입찰이 잇따랐다. 지난달 예금보험공사의 우리금융 주식 블록세일(시간외 대량 매매)을 맡았던 국내외 4개 증권사가 모두 0~0.02%대 수수료를 써내 '수수료 제로'까지 등장했다. 1조원짜리 대규모 거래의 대가로 4개사가 보장받은 수수료는 전부 합쳐 2억여원에 불과했다.

퇴직연금시장에서도 공기업들이 은행 보험 증권의 제살깎기식 고금리 경쟁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의 잇단 경고와 행정지도에도 불구하고 일부 공기업이 고금리를 요구하는 바람에 연 7~8%의 고금리를 보장하는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고채(3년 만기) 금리가 연 3.7%인 점을 감안하면 퇴직연금사업자(금융회사)들은 4%포인트 안팎의 역마진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퇴직연금 주무 부처이자 노동부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마저 금융회사들의 금리 경쟁을 부추겨 눈총을 받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덤핑을 통해 외형 부풀리기에 치중하고,공기업들은 증권사들이 '트랙 레코드(취급 경력)'를 쌓아야 하는 약점을 이용해 과도하게 수수료 인하 압박을 넣으면서 금융시장 전반의 질서가 혼란스러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