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4일 건군 이래 처음으로 군 통수권자 자격으로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형식은 '모두 연설'이지만 대국민담화의 성격을 담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천안함 사태를 그만큼 엄중하게 본다는 얘기다. 메시지는 안보 기능 대폭 강화,강도 높은 군(軍) 개혁,단호한 대응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강한'이란 표현을 11번이나 썼다. 안보시스템의 대대적인 쇄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강도 높은 질타와 군 지휘관들의 통절한 반성이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주적'개념 부활 검토

이 대통령이 국가안보총괄점검기구를 직속으로 구성하겠다고 밝힌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대통령이 직접 국가 안보 시스템 정비의 지휘봉을 잡겠다는 뜻이다. 안보 역량 전반,위기 관리 시스템,국방 개혁 등을 재점검하고 개선책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9 · 11테러 이후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블루리본 위원회'를 연상케 한다. 이와 함께 안보특보를 신설하고 대통령실 위기상황센터를 위기관리센터로 바꿔 안보 기능을 대폭 강화하도록 했다.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 안보 시스템 대수술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주적 개념 부활을 시사하는 발언들도 했다. "불과 50㎞ 거리에 가장 호전적인 세력의 장사포가 우리를 겨누고 있음을 잊고 산 것도 사실" "안보대상이 뚜렷하지 않도록 만든 외부환경이 있었다"는 등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주적 개념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6년 전 '북한은 주적'이란 표현이 국방백서에서 사라진 이후 일각에서는 이를 부활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우리 장병들에게 싸워야 할 대상국을 특정해주지 않음으로써 기강 해이를 초래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 대통령,비공개 회의서 질타

이 대통령은 일단 "군복을 입은 모습을 자랑스럽게 하겠다"며 군 격려성 발언부터 했다. 그러면서 "작전도,무기도,군대 조직도,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며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취임 이후 수차례 국방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군 내부의 고질적인 부조리와 비리를 척결하지 못한 데 대해 자성하며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비공개 회의로 들어가자 '강한 정신력,매너리즘'등을 언급하며 35분간 군의 기강을 다잡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회의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무거웠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이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데 어느 해외 현장 한곳에서 사고가 나면 10분 안에 기업 총수에게 보고가 들어온다. 이번 구제역 발생 때도 10분 안에 나에게 보고됐다"며 "최적접(最敵接) 지역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 보고가 늦어진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질타했다. 이어 "지휘관의 생각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솔선수범하라.일선 병사들은 구조활동할 때 보니까 서로 전우애를 발휘하더라"며 환골탈태를 주문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의 지적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지난 3월26일은 우리 안보태세의 허점을 드러내고 소중한 전우들이 희생됐다는 점에서 통렬히 반성해야 할 날로 기억해야 한다"고 자성했다.

◆당초부터 북 개입 파악?

"천안함은 단순한 사고로 침몰하지 않았다. 남북 관계를 포함해 중대한 국제문제임을 직감하고…"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주목된다. 천안함 사고 주범으로 북한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원인을 찾고 나면 나는 그 책임에 관해 분명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한 것과 연결지어 당초부터 '북한 개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후속 대응을 면밀하게 검토해 왔다는 해석이 나온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