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국민화가' 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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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가 고향인 박수근은 1 · 4후퇴 무렵 서울 창신동으로 이사해 미군부대에서 초상화 등을 그려주며 끼니를 이었다. 보통학교만 나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무명화가의 작품이 잘 팔릴 턱이 없었다. 그래서 툭하면 부인이 양식을 빌리러 다녔다. 어쩌다 그림을 한 점 팔면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는 게 유족들의 회고다. 셋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너의 집은 뭘해서 먹고 사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꿔서 먹고 살아요. "
박수근 작품에 먼저 주목한 건 주한 미국인들이었다. 은행원 남편을 따라 한국에 머물던 미술애호가 마거릿 밀러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의 그림을 친지나 화랑에 팔아주곤 했다. 1960년대 초 박수근은 "보내드린 소품 '노인'은 40달러,'두 여인의 대화'는 50달러입니다"라는 편지를 캘리포니아의 밀러 부인에게 보냈다. 당시 50달러면 쌀 서너 가마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헐값에 해외로 건너간 그의 작품이 200여점으로 추정된다.
1965년 작고 직후에도 몇 만원에 살 수 있는 그림이 적지 않았고,비싸야 수십만원에 거래됐으나 시간이 갈수록 값이 치솟았다. 남준우 서강대 교수가 1998~2008년 서울옥션과 K옥션에서 경매된 박수근 작품 평균가격을 계산해 보니 3억4600만원에 달했다. 국내 화가 중 가장 비싸다. 경매 최고가 기록도 1950년대 후반 작품 '빨래터'(45억2000만원)가 갖고 있다. 그의 그림값이 비싼 건 소박한 여인과 아이,촌로 등 친숙한 인물을 화강암처럼 질박한 질감으로 향토색 짙게 묘사해낸 독자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작품수가 유화 300여점으로 적은 것도 이유로 꼽힌다.
박수근의 그림 45점을 한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된다. 7~30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국민화가 박수근 45주기'전이다. 대부분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어렵게 빌려온 작품들이라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거란다. 다큐멘터리 영상과 사진,밀러 부인과 주고 받았던 편지 사본 등도 전시된다.
박수근은 아침마다 방을 걸레질하고 마당을 쓴 뒤 종일 그림을 그리다 저녁이면 막걸리 한 잔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림값 대신 물감을 받을 만큼 가난했으면서도 평생 성실한 작가로 일관한 삶도 감동을 준다. 이번에 영문화집도 함께 출간됐다니 그의 작품을 세계 시장에서 평가받는 기회로 삼아볼 만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박수근 작품에 먼저 주목한 건 주한 미국인들이었다. 은행원 남편을 따라 한국에 머물던 미술애호가 마거릿 밀러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의 그림을 친지나 화랑에 팔아주곤 했다. 1960년대 초 박수근은 "보내드린 소품 '노인'은 40달러,'두 여인의 대화'는 50달러입니다"라는 편지를 캘리포니아의 밀러 부인에게 보냈다. 당시 50달러면 쌀 서너 가마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헐값에 해외로 건너간 그의 작품이 200여점으로 추정된다.
1965년 작고 직후에도 몇 만원에 살 수 있는 그림이 적지 않았고,비싸야 수십만원에 거래됐으나 시간이 갈수록 값이 치솟았다. 남준우 서강대 교수가 1998~2008년 서울옥션과 K옥션에서 경매된 박수근 작품 평균가격을 계산해 보니 3억4600만원에 달했다. 국내 화가 중 가장 비싸다. 경매 최고가 기록도 1950년대 후반 작품 '빨래터'(45억2000만원)가 갖고 있다. 그의 그림값이 비싼 건 소박한 여인과 아이,촌로 등 친숙한 인물을 화강암처럼 질박한 질감으로 향토색 짙게 묘사해낸 독자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작품수가 유화 300여점으로 적은 것도 이유로 꼽힌다.
박수근의 그림 45점을 한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된다. 7~30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국민화가 박수근 45주기'전이다. 대부분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어렵게 빌려온 작품들이라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거란다. 다큐멘터리 영상과 사진,밀러 부인과 주고 받았던 편지 사본 등도 전시된다.
박수근은 아침마다 방을 걸레질하고 마당을 쓴 뒤 종일 그림을 그리다 저녁이면 막걸리 한 잔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림값 대신 물감을 받을 만큼 가난했으면서도 평생 성실한 작가로 일관한 삶도 감동을 준다. 이번에 영문화집도 함께 출간됐다니 그의 작품을 세계 시장에서 평가받는 기회로 삼아볼 만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