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산하 금융노조 간부들이 지난 3일과 4일 한국노총 임원실을 점거,지도부 사퇴 등을 요구하며 밤샘농성을 벌였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의 타임오프(임금받는 노조 활동 시간) 한도 결정으로 회사에서 임금을 지급받던 전임자 숫자가 줄었다며 반발한 것이다. 민주노총 산하 현대자동차도 근면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투쟁을 선언했다.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노조 간부가 회삿돈을 받으면 되나"

노동전문가들은 "노동계가 전임자 임금 축소를 문제삼아 실력행사를 벌이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꾸짖는다. 노동운동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라도 전임자 임금은 노조가 조합회비에서 자체 충당하는 게 맞다는 지적이다. 회삿돈을 받으면서 노조운동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선진국에선 전임자 축소를 문제삼아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노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금융노조와 같이 임금이 많은 부자노조가 전임자를 유지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후안무치한 행동"이라는 말까지 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도 "대기업노조에서 자기 이익만을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이는 것은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며 "금융노조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점거농성을 벌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들 교수들의 지적이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노동계 내부에서조차 두 교수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독립'을 주장하는 운동가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타임오프 한도에 대한 노동계의 불만이 부자노조인 금융노조에서 촉발됐다는 점은 더욱 아이러니다. 지금까지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불만이 있을 경우 민주노총이 선봉에 서고 온건노선의 한국노총이 뒤따르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금융노조가 맨 먼저 총대를 멨다.

금융노조는 조합원 9만6000여명이 소속된 대형노조로 최상위 임금수준을 자랑하는 부자노조이다. 노동부의 '노조 실태조사 현황'에 따르면,외환은행의 전임자 급여는 연(年) 9385만원이고,국민은행의 전임자는 연 7920만원에 이른다. 근면위 결정에 따라 유급 전임자 수를 현재의 295명에서 162명으로 줄여야 한다. 금융노조 조합원들은 현재 기본급의 1%를 조합비로 내고 있다. 20년차 노조원의 연 급여는 7000만원이 넘지만 조합비는 월 2만5000원에 불과하다. 임금에서 차지하는 기본급 비중이 낮은 임금구조 탓이다. 통상임금 기준 1%를 걷는 다른 제조업 노조원들에 비해 노조비 규모가 절반도 안되는 이유다. 전임자에 대한 회사 측 임금지급이 축소될 경우 조합비를 1%만 더 인상하면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면위 결정에 반발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다.

◆"또다시 변질되나" 우려 목소리

6일로 예정된 노동부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고시가 10일께로 미뤄질 것으로 알려지면서 고시내용이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동부가 "국회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환노위에 먼저 보고하고 고시하는 것이 절차상 맞다"고 보고 환노위를 거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계나 학계에선 논의과정에서 타임오프 한도 내용이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타임오프 대상을 확정할 때도 국회를 거치면서 노동계에 유리한 쪽으로 일부 손질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남 교수는 "이익집단과 정치인 관료 등 이른바 '철의 3각'이 손을 잡으면 타임오프 한도 내용이 변질돼 노사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며 "노동계가 공갈마케팅으로 정부나 정치권을 밀어붙이더라도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질서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노총이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지만 국회 환노위 논의를 거치는 데다 노동부가 설득에 적극 나서고 있어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