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중학생 시절 여름방학 때 일이다. 아버지께서 테니스를 좋아하셨기에 집에 테니스라켓이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동네 친구들과 라켓을 들고 집 근처 테니스 코트에 들어섰다. 그렇지만 제대로 배운 적이 없던지라 라켓을 서투르게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20대 초반에 피부가 검게 그을린 여자 테니스 코치가 다가왔다. 그녀는 "가르쳐 줄테니 따라하라"고 얘기했다.

그 시절만 해도 테니스는 고급 운동이었다. 더구나 여자 테니스 코치는 더욱 드물었다. 그런데 비록 어린 마음이었지만 여자한테 배운다는 사실이 남자라는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쭈뼛거리며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그 여자 코치는 "지금 서툰 건 창피한 게 아냐! 너희는 어려서 빨리 배울 것이고 똑바로 배워서 잘하게 되면 나와 실력이 동등해질 거야! 상대가 누구든 배우는 걸 절대 창피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러면 아무런 발전도 없을 것"이라고 충고하며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14살의 나이였지만 큰누나뻘 되는 여자 코치의 말이 매우 설득력 있게 들렸고,그래서 열심히 테니스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 후,그 여자 코치의 말은 배움에 대한 일생의 좌우명으로 마음 깊이 자리잡게 됐다.

나는 학업과 직장생활을 위해 1980~2000년대 초까지 미국과 일본에서 약 7년간 살면서 선진국 문화를 경험했다. 이들 두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잘산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동서양 간 문화적 차이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진국 국민이 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과 일본 국민은 자신보다 무엇인가 뛰어난 사람들을 칭찬하고 상대를 적극 인정해주려고 했다. 소위 '잘난 사람들'의 장점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를 적극 배우려는 긍정적인 자세가 사회 저변에 깔려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부모의 노력과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6 · 25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몇 차례 경제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한 우리나라는 글로벌 기업들이 주춤하는 사이 어느새 앞서 달리고 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성과와 G20(주요 20개국) 의장국의 위치에 이르게 될 정도로 국가 위신은 크게 신장됐다.

좋은 학교와 질 높은 교육만이 더 나은 미래를 앞당긴다. 학교나 사회에서 자신보다 능통한 사람이라면 직급과 지위에 관계없이,남녀 차이를 불문하고, 자신이 모르거나 모자란 부문은 배우려는 자세가 긴요하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은 인정하고 이들로부터 열린 자세로 배우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누구나 좋은 실력을 쌓을 수 있고 나라도 선진국으로 한발 앞서 다가갈 것이다. 내게 일생의 교훈을 가르쳐 준 여자 코치는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같은 부족한 사람에게 테니스를 가르치며 좋은 교훈을 주고 있으리라.

황수 GE코리아 대표 soo.hwang@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