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연기를 공중에 불어 날리는 순간,숱한 사연들이 연기 속으로 사라진다. 담배는 때론 위로의 말을 건네는 친구 같은 존재다.

지금은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지만 왠지 모르게 외로운 날,좋은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날이면 담배 연기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정 · 재계와 문화계 유명 인사들이 담배를 손에 쥐고 있거나 입에 물고 있는 표정을 포착한 사진 작품을 모은 이색 사진전이 마련된다.

오는 19일부터 6월1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사진 작가 전민조씨의 '담배 피우는 사연'전에는 유명 인사들의 흡연 장면을 포착한 작품 30여점과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소개된다.

출품작 중에는 최규하 ·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김수환 추기경,김종필 전 국무총리,신현확 전 총리,노신영 전 외무부 장관,구자춘 전 서울시장,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음악가 금수현씨,드라마 작가 김수현씨,박홍 전 서강대 총장,가수 조용필 · 서유석씨,영화배우 신성일씨,영화감독 임권택씨,원로 화가 천경자씨 등 쟁쟁한 인사들이 등장한다.

렌즈에 잡힌 이들의 흡연 장면은 1960~1980년대 변혁기를 관통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흡연 모습은 당시의 정치적인 고뇌를 그대로 대변해 주는 듯하다. 전두환 군사 정권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가 김 추기경의 표정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불붙은 담배를 꼭 쥐고 있는 모습의 신성일씨는 1980년대 카메라 앞에서 "영화 하나만을 위해 전력투구하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지 결실이 있을 것"이라며 "담배를 피우는 것도 내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말했다.

고 유진오 박사는 줄담배를 피우는 애연가였다. 1980년 이태원동 자택에서 찍은 그의 흡연 사진 옆에는 '자유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차지하려고 애쓰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란 문구가 적혀있다.

연신 뻐끔담배로 울분을 토하는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그림을 그리다 잘 안 풀리면 붓을 놓고 멍하니 담배를 피웠다는 원로 화가 천경자씨,담배가 꼭 남성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표정으로 거침없이 연기를 날리는 김수현씨의 표정을 담은 작품도 눈길을 끈다.

전민조씨는 "사진을 찍으면서 담배 피우는 인물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됐다"며 "사진은 아름다운 삶만 담는 반쪽 짜리가 아니라 죽음도,어두움도 다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시회에 맞춰 사진집 《담배 피우는 사연》도 출간된다. (02)734-7555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