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규모인 약 6500억원어치의 '딱지어음'을 발행해 수백명에게 팔아 넘긴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딱지어음은 만기일에 부도가 나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어지는 어음이어서 최종 소지자가 피해를 떠안게 된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유령업체를 세워 딱지어음을 유통시킨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이모씨(64)를 구속하고 공범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건설 시행사 등으로 위장한 '통현 산업개발'과 '철갑 종합상사'란 유령회사를 차리고 어음 액면가 6576억원어치(535장)를 발행해 판매,15억~16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당좌계좌를 개설한 후 어음용지를 발급하는 은행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5000만~1억원의 자금을 계좌에 넣고 약 1년 동안 장당 수백만원의 소액어음을 발행해 30여일 단위로 정상적으로 결제 처리하며 신용을 쌓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거래은행에서 '우량고객' 대우를 받자 사용하지도 않은 어음용지를 사용했다고 허위 신고하는 수법으로 어음용지를 수백장 받아 갔다. 은행 측은 서류만 믿고 용지를 발행해 준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 등은 어음용지를 수령한 날부터 3개월 뒤를 부도예정일로 정하고 해당 기간 내에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게재하거나 지인을 통해 통상 액면가 1000만~5000만원인 딱지어음을 장당 280만~300만원의 가격에 판매했다. 이 가운데는 액면가 350억원짜리도 있었다. 구매자는 대부분 급전이 필요해 어음을 사서 물품대금이나 부동산 대금 등을 치르려는 사업자 등이었다. 이씨 등은 딱지어음의 식별이 어렵도록 회사 소재지 이외의 지역에서 주로 판매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이렇게 팔린 어음 6576억원어치는 6~7단계의 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액면가에 가깝게 가격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소지자 400여명은 딱지어음인지도 모르고 구매했다 발행자인 유령회사 부도로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됐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딱지어음=고의적으로 부도낼 계획을 세우고 발행해 유통되는 어음.약속어음은 첫 거래 때는 10장만 교부되고 이후 거래실적과 사용정도 등에 비례해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어음이 늘어난다. 이 점을 이용해 사기단들은 처음에는 정상적인 거래로 신용을 쌓고 이를 기반으로 대량의 어음이나 수표용지를 교부받아 팔아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