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방중] 베이징서 하루만 체류…홍루몽 관람 취소하고 서둘러 귀국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방중 나흘째인 6일에도 언론과 숨바꼭질을 하며 예상밖의 행보를 보였다. 오전부터 회담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과 달리 베이징 중관춘 생명공학원을 방문한 뒤 댜오위타이에서 하루를 보냈다. 또 당초 중국 지도부와 단체 관람할 것으로 알려졌던 피바다가극단의 홍루몽 공연은 보지 않고 평양 귀환길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10분쯤 숙소인 댜오위타이를 나서 중관춘의 생명과학원을 방문한 뒤 1시간30분 만인 10시40분 돌아왔다. 생명과학원은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중국이 조성한 연구소다. 김 위원장이 생명과학원을 찾은 이유는 북한이 평양과 남포에 첨단 기술 및 의약산업 기지를 조성키로 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는 이곳에서 첨단산업 육성을 통해 1등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오찬 이후에도 숙소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댜오위타이에 머물며 중국 지도부와 연쇄 회담을 가졌다. 인민대회당 혹은 중국 지도부의 사무실이 있는 중난하이에서 회담이 열릴 것으로 관측됐지만 댜오위타이가 회담장으로 사용된 것은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오전 7시부터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이 수시로 댜오위타이 정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목격됐다. 김 위원장이 중관춘 생명과학원 방문 직후인 11시께 댜오위타이로 진입한 승용차 가운데 원자바오 총리가 탄 차량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 총리는 김 위원장과 오찬을 함께하며 회담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전문가들은 "댜오위타이 내부에서 확대 정상회담과 실무회담 등이 잇달아 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오후 4시부터 갑자기 베이징역 주변에 경비가 강화되며 김 위원장이 이날 저녁 귀국할 것이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북한의 특별열차가 대기하고 있는 베이징역은 무장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됐고 일반인의 출입도 통제됐다.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통과할 단둥지역의 세관이 폐쇄됐고 철길 옆 중롄호텔에서 이날 손님을 받지 않기로 했으며,댜오위타이 영빈관이 7일부터 일반 투숙객을 받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 위원장의 6일 평양행 설이 이날 나온 것이다.

당초 오후 7시30분 피바다가극단의 홍루몽 공연을 중국 지도부와 함께 관람한 뒤 저녁 늦게 돌아갈 것으로 전망됐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건강을 고려,홍루몽 관람을 취소하고 귀환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양측의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자 김 위원장이 일찍 베이징을 떠난 게 아니냐는 시각과 오히려 회담이 순조롭게 풀려 일찍 떠나게 됐다는 정반대의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오후 4시15분께 숙소에서 나와 특별열차가 대기하고 있는 베이징역에 4시23분에 도착,평양으로 향했다.

댜오위타이에서 나오는 모습을 촬영하려던 외국 취재진을 중국 무장경찰이 완력으로 밀어내는 등 큰 혼란이 빚어졌다. 베이징역에서도 외국 기자들은 현장에서 무장경찰에 의해 강제로 격리 조치됐다.

중국 측은 김 위원장이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3박4일간 1400㎞를 이동했으며 전날 저녁 늦게까지 만찬을 가졌다는 점을 의식,6일 일정을 무리하게 짜지 않는 등 세심한 배려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에서도 김 위원장 일행이 이동할 때는 앰뷸런스가 예외없이 동행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