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그리스 구제금융은 1100억유로에 달한다. 구제금융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다. 이 정도면 유로화를 뒤흔드는 불신의 불은 끌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남유럽의 재정위기,'그리스 바이러스'는 오히려 확산되는 추세다. 출범 11년 만에 유로존과 유로화가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유로존 내 재정 불량국으로 분류된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에까지 '전염 우려'가 번지고 있다. 영국까지 '잠재 위험군'으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유럽연합(EU)과 IMF가 함께 나서면 문제가 없다"고 정책 당국자들은 뒤늦게 한목소리를 내지만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리스 바이러스가 궁극적으로 유로존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관론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형국이다.

유로존 재정에 대한 끝없는 우려는 세계 금융시장을 흔드는 최대 뇌관이다. 유로화 가치도 연일 급락세다. 심리적 저지선이라는 '1유로=1.30달러선'마저 붕괴됐다. 14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다.

비관론 확산이 문제다. 스페인만 해도 신용등급은 아직 일본과 같은 수준(AA)이고,정부 부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53%에 그친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신용등급이 투기등급(BB+)인 데다 부채가 GDP의 115%에 달하는 그리스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경제 규모도 스페인은 그리스의 4배에 달한다. 포르투갈 역시 아직은 그리스보다 나은 상황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참가자들의 '심리'를 무시할 수 없다. 불안심리를 이용하는 투기세력도 있다. 재정 악화에 따른 국채 가격 하락을 우려한 투매가 발생할 경우 조달비용이 급증하고 이로 인해 자금조달도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 상황을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해 '그리스는 베어스턴스,포르투갈은 리먼브러더스,스페인은 AIG'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실제 유럽 은행들은 부채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도미노처럼 위기가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지난해 말 현재 포르투갈 은행들은 그리스에 100억달러를 빌려줬고 스페인 은행들은 포르투갈에 860억달러,독일 은행들은 스페인에 2380억달러를 대출했다. 스페인은 프랑스 은행에도 2200억달러의 빚이 있다. "그리스 구제금융이 실상 유로존 구제금융"이라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다.

EU의 '리더십' 부재와 그리스 노조의 터무니없는 반대도 시장 불안감을 키웠다. 그리스가 긴축안을 이행하지 못하면 다른 EU국들이 유로화 사수에 공동 보조를 취할지도 의문이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