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뼈와 나뭇가지로 기둥을 세우고 잔가지와 동물 가죽을 덧대 지은 움집.

안으로 고개를 쑥 들이밀고 여기서 어떻게 사람이 살았을까 상상해 본다….

옷을 걸치지 않은 사람들이 창과 돌맹이를 들고 사냥에 나선다. 어른들이 넙적큰뿔 사슴을 메고 돌아오자 아이들은 뒤를 졸졸 따르며 즐거워 한다.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살을 발라낸다. 모닥불가에선 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국내의 대표적 구석기 유적지인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선사유적지.한탄강이 빙 돌아 흐르는 곳에 나무로 둘러싸인 유적지엔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잔디밭의 다양한 모형들은 자연 속에서 비바람,맹수와 맞서 싸우며 살았을 구석기인들의 일상을 상상하게 만든다. 사냥을 하거나 아이를 둘러업고 걸어가는 모습,물고기를 잡는 남자들의 표정이 생생하다. 구경 나온 아이들이 달려가 신기한 듯 만져보고 함께 사진도 찍는다.

전곡리선사유적지로 구석기인들을 찾아나섰다. 전곡리유적지는 공기가 맑고 산책로도 잘 조성돼 있어서 아이들과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이 유적지를 단지 괜찮은 공원쯤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한반도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고대 인류의 문화 연구에 귀중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979년 사적 제269호로 지정된 전곡리유적지가 발견된 과정은 무척 재미있다. 1978년 동두천 미군기지에서 근무하던 그렉 보웬이란 병사가 한탄강 유원지로 놀러왔다가 석기로 보이는 주먹도끼 몇 점을 우연히 발견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보웬은 주먹도끼 사진과 채집 과정을 상세하게 적어 프랑스의 저명한 구석기 전문가 보르드 교수에게 보냈다. 보르드 교수는 보웬을 서울대 박물관장이던 김원용 교수(1993년 작고)에게 보냈고,김 교수는 정영화 영남대 교수와 함께 이 유물이 동아시아 최초의 '아슐리안형 석기'임을 밝혀냈다. 보르드 교수도 같은 의견을 냈다. 곧 전곡리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졌고 김 교수팀의 연구결과는 세상을 놀라게 했다.

돌의 양쪽 면을 가공해 날을 세운 '아슐리안형 석기'가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전기 구석기문화의 세계적 전개양상에 대해 유럽 · 아프리카는 찍개문화에서 아슐리안 석기로 발전했지만 동아시아에선 찍개문화만 존재했다는 H 모비우스의 학설을 세계 고고학계가 정설로 받아들였기 때문"(전곡리선사유적지 관계자)이다. 그런데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가 이 학설을 무너뜨리는 단초가 된 것이다. 이후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잇달아 아슐리안 석기가 나왔다. 전곡리선사유적지에선 30여년간 모두 11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약 8500점의 구석기 유물이 발굴됐다.

유적지 정문으로 들어서 산책로를 따라 쭉 걷다보면 곳곳에서 구석기인 모형과 마주친다. 구석기시대의 주거지인 움집도 시대순으로 재현해 놓았다. 구석기인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 같은 자연적인 은신처에서 생활했지만 간혹 야외로 사냥을 나서면 짧은 기간 머물기 위해 주거지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에서 후기 구석기시대로 갈수록 보다 튼튼하고 안정감있는 움집이 만들어졌다.

선사유적관에는 몸돌에서 떼어 낸 돌 조각인 격지와 몸돌,안팎날찍개,긁개 등 여기에서 출토된 다양한 석기류가 전시돼 있다.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석기를 만들었을지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지금보다 훨씬 수위가 높고 유적지에서 가까웠을 한탄강변에서 강돌을 날라 도구를 만들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토층전시관은 1981년의 제4차 발굴 피트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인데 관람객들의 반응이 특히 좋다. 발굴 피트란 '발굴한 자리'혹은 '발굴 구덩이'란 뜻.유적지는 기준점으로부터 사방 10m씩 사각형으로 구획해 위치를 구별한다. 예를 들어 'E0S1-Ⅱ피트'란 기준점에서 동쪽(East)으로 0m,남쪽(South)으로 10m 떨어졌다는 뜻.뒤에 붙은 숫자 'Ⅱ'는 사방 10m씩의 피트를 다시 사방 5m씩 나눠 차례로 숫자를 붙인 것이다.

수만년 전 인류의 흔적을 추적했던 연구팀의 발굴조사 활동 모습도 사진으로 보여준다. '연천과 주먹도끼'라는 12분짜리 3차원(3D) 애니메이션도 하루 6차례 상영한다.

어린 자녀가 있다면 선사체험마을은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코스다. 석기 제작,선사시대 먹을거리 체험,구석기 벽화 그리기,불피우기,움집 짓기 등을 직접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사유적지는 따로 입장료가 없지만 체험 프로그램은 1인당 4000원을 내야 한다. 30명 이상 단체인 경우 25% 할인해준다. 화~토요일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031)839-2201~2

유적지에선 매년 5월 어린이날을 전후해 '연천 전곡리 구석기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천안함 침몰 사고로 축제가 가을(10월1~5일)로 잠정 연기된 상태다. 단풍잎과 코스모스를 구경할 수 있는 가을엔 축제에 참여해 보자.전곡리 선사유적지를 꼼꼼히 둘러보는 데는 두 시간이면 족하다. 인근에 있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능과 연천향교도 또다른 볼거리다. 약 18m 높이의 절벽에서 쏟아지는 한탄강의 지류인 재인폭포도 비경을 연출한다.

평양에서 140여㎞쯤 떨어진 태풍전망대,북녘 땅을 볼 수 있는 열쇠전망대와 상승OP는 안보교육을 하기에 제격이다. 연천읍 차탄리에 있는 상승OP는 비무장지대인 연천평야가 바라다보이는 최전망 관측소다.

연천=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