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직원 대부분 남자지만 오히려 여자보다 더 스스럼 없이 대해요.
조직과 인맥은 관리하는게 아니라 곤계를 맺는 것.
일과 사랑중 선택하라면 망설임 없이 일을 택할 것.
이젠 여성 CEO아닌 CEO로 불리고 싶어요.

'비행기에서 한 남자가 내린다. 레드카펫을 걸어가 검은색 대형 세단에 오르고 사람들은 그에게 경례를 한다. '

'대한민국 CEO'라는 광고 카피를 내세운 쌍용자동차 '체어맨' 광고의 한 장면이다. 광고뿐만 아니라 드라마,영화,소설 등에서 비쳐지는 대부분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일반인들 역시 'CEO'하면 여성보다는 중후한 남성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국세청이 공개한 '국세통계로 본 한국의 CEO'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국내 CEO 2만2203명 중 여성의 비중은 4.8%(1074명)에 불과하다. 아직도 한국에서 여성이 CEO자리에 오르기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전체 여성 CEO 중 20~30대 비중이 8.6%로 전년(4.4%)에 비해 4.2%포인트 늘어났다는 것이다. 젊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그만큼 활발히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직 여성 CEO들로부터 '한국에서 여성CEO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들어봤다.

▼일을 사랑했다

구 모니카 사장(36)은 출판사에 재직중 예산상의 문제로 자신이 기획한 책 출판이 거부당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구 사장이 2006년 설립한 M&K출판사는 지금까지 '여자의 발견','연애잔혹사' 등 20권의 책을 발간했다. 구 사장은 "30세가 되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했다"며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자'고 결심한 후 무작정 출판사를 차렸다"고 말했다. 구 사장은 "책을 만들 당시에는 힘들지만 이후부터는 불로 소득"이라며 "평생 직장으로 이만한 직업이 없다"고 자랑했다. 결혼에 대해서 묻자 "안 했는지 못 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리곤 "두 가지를 잘하기가 힘들었다"며 "능력도 있고 가정에도 충실할 수 있는 여성을 원하는 남자들의 이중성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상전문업체인 프레임스토리의 김형미 대표(29)도 광고회사에 다니다 노혜민 대표(29)와 함께 지난해 8월 회사를 차렸다. 김 대표는 "바쁘다고 연애를 못한다는 것은 핑계"라며 "하지만 일과 사랑 중 선택하라면 망설임 없이 일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파워로 무장한 아이언맨

프레임스토리는 고급 웨딩영상을 전문적으로 촬영한다. 이 업체 직원 7명 중 여성은 대표 두 명뿐이다. 김 대표는 "남자 직원들을 다루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상사가 여자이고 부하 직원들이 남자니까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장이 남자고 직원들이 여자라면 오히려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죠.남자직원들이라 뒤끝이 없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에요. "

김정문알로에의 최연매 대표(50)는 20~30대는 아니지만 특유의 소프트파워로 회사를 일으킨 여성CEO 중 한 명이다. 2006년 남편인 김정문 회장이 작고하자 회사를 이어받은 최 대표는 먼저 임직원 학자금 지급,교육 기회에 대한 복지제도를 확대했다. 직원이 석 · 박사 과정을 밟으면 학자금 전액을 지원해준다. 또 직원들끼리 서로의 좋은 점을 말하는 '칭찬하기 캠페인'과 한달에 한두 권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써내도록 하고 최 대표가 일일이 읽어보면서 확인하는 '독서경영'도 진행하고 있다. 최 대표는 "경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브앤테이크'가 아니라 '기브앤기브'라고 강조했다.

"조직과 인맥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하는 것이에요. 전 항상 사람을 만나면 '내가 저 사람에게 무엇을 받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저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배려는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밖에 없지요. "

▼편견을 벗어난 달처럼

매드포갈릭,레드페퍼 리퍼블릭 등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외식기업 썬앳푸드의 남수정 사장(42)은 마켓오 브랜드로 잘 알려진 노희영 오리온 부사장(47)과 함께 외식업계의 파워 우먼으로 꼽힌다. 남 사장은 평소 청바지에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때문에 주변에선 꾸밀 줄 모르는 남 사장에 대해 '선머슴 같다'는 말도 한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자신이 여자라는 것보다 외식업체 CEO라는 생각이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남 사장은 "여성CEO라는 단어 자체도 차별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CEO는 CEO일 뿐 성별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배보경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CEO로 보기보다는 '여자'라는 인식을 먼저 하기 때문에 사업 파트너로서 이미지가 약하다"며 "때문에 여성CEO라면 남성 CEO보다 두 배의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근 여성CEO를 위한 포럼과 토론이 많다"며 "장기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함께 참여해 여성CEO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변화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