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미술관협회에는 흥미로운 미술관 하나가 등재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 미술관(San Francisco Airport Museum)'이 그것이다. 이 공항은 미국 공항 역사상 처음으로 미술관이라는 정식 호칭을 얻어 공항이면서 동시에 미술관이 되었다. 미술관이라는 또 하나의 타이틀답게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곳곳은 문화예술의 향기로 가득하다. 국제터미널 빌딩 주요 게이트웨이마다 다양한 예술 분야의 전시 행사가 열리고 있고,다른 공항 내 터미널도 오가는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탄성을 자아내는 작품들로 풍성하다. 여행의 주요 길목인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은 이제 문화예술에서도 놀라운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개념 미술관은 1980년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의 특별한 '미술관 프로그램'에서 출발했다. 여기에는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주면서 여행자의 향수를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인간적인 공항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있었다. 감정의 첨예함과 여행의 피로로 가득한 공항의 환경을 보다 인간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데 있어 미술은 최고였다. 그들의 선택은 적중했고 19년간 지속된 샌프란시스코미술관의 프로그램 덕택으로 1999년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은 미술관이라는 타이틀까지 획득했다. 이 엉뚱해 보이는 공항과 미술계의 성공적인 만남은 오늘날 공항 아트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게 됐다.

현재 외국 국제공항들을 보면,미술계와의 협업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그 협업의 가치를 신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새크라멘토 국제공항 신축 계획은 건축과 아트가 하나의 프로젝트로 묶여 진행 중이다. 2011년 완공될 이 공항은 건물의 초기 설계에서부터 내부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미술 작가들과 건축가들이 직접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21세기 최고의 단일 아트프로젝트로 홍보할 만큼 투자 규모도 대단하지만 예산확보에 힘을 실어 준 공공기관의 용단과 완공 후 공항 내에서 진행할 아트프로그램까지 염두에 둔 세밀한 예산 책정도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선택된 열세 점의 대형 작품들의 순수성이 공항 내 기능과 어울리도록 표출시킨 계획은 예술의 힘을 제대로 간파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인천공항의 모습은 아쉽기만 하다. 현재 인천공항은 국제화물 세계 2위,국제여객 세계 10위권,공항 서비스 4년 연속 세계 1위를 비롯해 세계 최대의 물류량과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정작 공항에는 세계가 인정한 한국 최고의 예술작품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LA국제공항에 설치된 조승호 작품(비디오아트)이나 샌프란시스코공항의 강익중 작품(설치미술),오는 7월 개막하는 유럽 최대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의 포스터로 선정돼 모든 거리의 벽을 치장하게 될 배병우 작품(사진).우리는 그 진가를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계 공항들이 크리에이티브 플라잉을 외치며 미술계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에도 우리는 성장의 수치만 자랑삼아 내세울 뿐이다. 인천공항에서의 여행자는 비행기를 타고 떠나버릴 사람들이요,쇼핑의 대상일 뿐 즐거운 여행을 기원하는 인간적인 배려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으로 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해외 유명 공항들.차별화와 중장기적 전략을 통해 독특한 매력 포인트를 만들어낸 그들의 기획력이 부럽다. 한국은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최고의 한국미술 문화가 포진해 있는 국가다. 이제는 그 문화예술을 끄집어내 일상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공항은 보이지 않는 국경들이 얽혀있는 곳이 아니던가.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뒤섞여 있는 이 공항에는 그 어느 장소보다도 사람의 정서와 감성의 코드가 필요하다. 21세기형 선진화라 함은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어느덧 선진의 길목에 서 있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술의 힘이 필요하다. 이제,수많은 여행길을 따라 예술의 꽃을 피워낼 대한민국 국제공항의 모습을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이옥경 < 가나아트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