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공항 철도 항만 등 대형 인프라 운영권을 민간기업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프라를 정비 · 관리 · 운영하면서 요금도 받을 수 있는 '사업운영권' 개념을 새로 만들어 이를 민간에 판다는 것이다. 선진국 중 최악의 상황인 재정적자를 감안해 인프라 정비에 드는 재정 부담을 줄여보려는 고육책이다.

일본 정부는 다음 달 중 발표할 신성장전략에 이 같은 인프라 운영 개선방안을 포함하기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7일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민자유치사업(PFI)이 대형 인프라 분야로 확대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일본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일본은 1999년 PFI제도를 도입했지만 그동안 공무원 숙소나 문화시설 등 공공 건물을 짓는 정도에 그쳤다. 본격적인 제도 활용을 못한 것이다. 일본의 PFI사업은 한국의 임대형 민자사업(BTL)과 비슷한 개념이다. 민간기업이 공공시설을 건설한 뒤 운영까지 맡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지방자치단체는 '지정관리자제도'를 이용해 공공시설의 관리와 운영을 민간기업에 맡길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론 조례 등으로 운영을 제한하거나 위탁기간을 단기간으로 한정하는 사례가 많아 공공시설의 민간 위탁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공공시설 사업운영권을 수십년간 민간에 넘기는 새 방식을 도입할 경우 사업운영권 매각 수입도 얻고 재정 부담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간사업자는 안정적으로 시설을 운영하면서 사업운영권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또 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것일 뿐 소유하는 게 아니어서 고정자산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일본 정부는 공공시설 운영자에게는 등록면허세나 부동산취득세 등을 면제하고 사업운영권의 감가상각을 인정해 시간이 지날수록 법인세를 줄여주는 등 혜택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방향으로 현행 PFI법을 크게 바꾼 개정안을 내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 재계에서는 PFI보다 더 강력한 정부와 민간의 연계를 의미하는 정부 · 민간파트너십(PPP)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본 정부는 빚더미에 올라 있는 오사카 인근 간사이 국제공항의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2012년께 오사카 국제공항(이타미공항)과 통합한 뒤 지주회사를 설립하고,공항 운영권을 민간기업에 넘기는 방안을 밝힌 적이 있다.

공항 운영권을 팔아 그 돈으로 간사이 공항의 빚을 갚는다는 구상이다. 간사이 공항의 운영권 매각이 PFI사업 확대의 첫 번째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지자체가 관리하는 지하철을 민간기업에 맡기거나 노후화된 도심 고속도로를 개 · 보수해 민간이 운영하도록 하는 방안도 이뤄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향후 50년간 일본에서 고속도로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 개 · 보수에 필요한 비용은 312조엔(약 3800조원)을 웃돈다. 일본은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 재정 상태가 악화일로이기 때문에 인프라 정비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