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펀드시장의 순자산 규모는 약 350조원(4월 말 기준).이 큰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은 어떤 펀드를 최고로 평가할까.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미래에셋,삼성,한국,신한BNPP,동양,하이,우리,KB 등 8개 대형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1명의 펀드매니저가 '신영마라톤'을,5명이 '한국밸류10년투자'를 가장 투자하고 싶은 펀드로 꼽았다. 범위가 지정되지 않은 무작위 추천 설문이었는데도 이들 펀드에 표가 몰렸다. 두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인 신영자산운용의 허남권 주식운용본부장과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을 만나 해당 펀드의 운용철학과 특징에 대해 알아봤다.

<편집자 주>

"가치투자의 철학을 끝까지 유지한 게 성공요인입니다. "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한국밸류자산운용 사무실에서 만난 이채원 부사장(46)은 펀드매니저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에 대해 "장기 · 가치 투자라는 펀드의 운용 철학을 시세에 흔들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밸류의 대표 펀드인 '한국밸류10년투자1'은 2006년 4월 설정됐다. KBP펀드평가에 따르면 설정일 이후 누적 수익률은 56.00%로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38.43%)을 크게 웃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 부사장은 다른 자산운용사와는 달리 단기 성과가 나빠도 운용 철학을 고수할 수 있었던 덕분에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른 자산운용사에서는 펀드매니저가 아무리 환상적인 포트폴리오를 짜오더라도 초기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상급자부터 투자자들까지 온갖 '외풍'에 시달려 결국 포트폴리오를 변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한국밸류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는 것.

이 부사장은 "모든 경영진이 회사의 운용 철학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기 때문에 외압에 흔들려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일은 절대 없다"며 "투자자들도 성장주가 오르던 시기에 우리 펀드 수익률이 좋아지자 운용 철학을 바꾼 것 아니냐고 항의할 정도로 믿어준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한국밸류10년투자1'의 특징은 금리보다 2~3%포인트 정도 높은 수익을 내는 게 목표인 '눈높이가 낮은 펀드'라고 설명했다. 고수익을 원하지 않는 대신 깨질 때 덜 깨지면 장기적으로는 복리 효과로 더 큰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안겨줄 수 있다는 신념에서다. 그는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 예측할 능력이 없다. 다만 저평가 기업을 발굴해 투자한 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능력은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한국밸류는 이를 위해 저평가 가치주 종목 선정에 공을 들인다. 이 부사장을 제외한 14명의 펀드매니저가 모두 섹터를 맡아서 리서치 업무를 함께 한다. 정량적 분석을 통해 저평가 기업을 골라내고 투자할 기업은 반드시 직접 방문해 장기적으로 주가가 오를 만한 기업인지 평가한다. 이 부사장은 "펀드매니저가 14명이지만 운용하는 펀드가 6개인 데다 같은 기조로 운용하기에 좋은 종목 선정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종목을 선정한 뒤 관리하는 데에도 공을 들인다. 원칙은 주가가 오르면 판다는 것.거의 모든 주식형 펀드들이 편입하고 있는 종목인 삼성전자와 같은 주식도 기업가치가 주가에 충분히 반영돼 있다는 판단에 따라 한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 부사장은 "시장을 이끌어가는 대장주보다는 대체재인 저평가 가치주를 선호한다"며 "국내 주식형 펀드가 평균 50~60개의 종목을 보유하는 것과 달리 분산 투자를 위해 약 100개 종목을 보유하는 것도 특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