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계 주요 국가의 은퇴 설계에 관한 설문 조사를 종합한 결과 한국 사람들은 노후에 대해 걱정을 가장 많이 하면서도 은퇴 준비는 오히려 제일 안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부분적으로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사람들이 은퇴 생활 수준에 대한 기대가 비현실적으로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노후 설계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노후 설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 중 하나는 여유자금을 모아서 노후를 대비한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노후를 위한 투자 대상에도 문제가 있다. 대부분 집 한 채 또는 적금 · 보험 상품 위주로 노후를 대비한다. 그러나 인구통계나 저성장 기조의 경제 전망을 보면 이들 자산의 장기적인 투자 수익은 그리 높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주식과 같은 장기 고수익 자산으로 노후를 대비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노후'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상품은 퇴직연금펀드와 개인연금펀드가 있다. 이들은 그 상품 자체의 속성상 장기형,적립식 성격을 띤다. 운용 성과에 따라 급여가 정해지는 DC형(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의 경우 일정 주기마다 회사에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납입금이 정기적으로 투자되고 개인연금의 경우에는 연말 소득공제를 위해 매년 일정 금액이 꾸준히 투자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주식투자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되는 투자 기간의 장기화,매입 단가 분산 효과 등을 모두 갖추고 있는 상품이다.

우리나라에는 총 270개에 달하는 퇴직연금펀드와 200여개의 개인연금펀드가 출시돼 있으며 총 자산액은 4조5000억원가량이다. 아직은 일반 펀드보다 규모가 영세한 데다 퇴직연금펀드의 경우에는 운용 역사가 몇 년 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좋은 퇴직연금,개인연금 펀드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렵다고 좋은 펀드를 고르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펀드 투자자들의 펀드 보유 기간은 평균 20개월로 매우 단기적 성향을 띠고 있지만 연금 관련 펀드 투자자들의 행태는 정반대다. 퇴직 또는 일정 연령 이전에는 투자를 중단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펀드 보유 기간이 길다.

물론 펀드를 교체할 수도 있지만 목돈이 아닌 적립식 투자인 데다 일반 투자자보다 전업성 · 전문성이 약하다 보니 귀찮아서라도 대부분 초기에 선택한 펀드를 끝까지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어떤 펀드를 골라야 노후 준비라는 장기 목표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 투자 원칙을 고수하는 펀드나 운용사를 선택하는 일이다. 대부분 퇴직연금펀드는 투자 기간이 짧은 일반 펀드의 자펀드 형태로 돼 있다. 그 결과 퇴직연금 자산이라는 특수한 조건에 맞춰 운용되지 못하고 일반적인 단기 위주 운용 패턴을 답습하고 있다. 장기 투자에 걸맞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운용회사 또는 모펀드라도 장기 운용 철학과 원칙을 고수하면서 실제로 그에 맞게 운용하는 곳을 골라야 한다.

또 운용 · 판매 보수가 저렴한 펀드를 골라야 한다. 장기 투자의 성과에 있어 보수는 결정적인 변수다. 예를 들어 연평균 5~7%의 수익을 올리는 펀드에 매년 2%의 보수가 부과된다면 25년이 지난 후에는 결과적으로 투자 수익의 절반 이상을 보수로 지불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최근에는 업계에서 수수료 및 판매보수를 낮추는 추세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보다 저렴한 펀드를 고르는 것이 유리하다.

인덱스 펀드를 고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펀드 보수는 사후 서비스 및 초과 수익을 위한 적극적인 운용을 위한 비용이다. 그러나 연금 투자자의 경우 어차피 장기로 보유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빈번한 펀드 정보 서비스가 큰 의미가 없다. 또 펀드매니저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어도 고율의 운용보수를 매년 떼면서 시장수익률을 꾸준히 상회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상품의 속성상 시장수익률을 좇아가고 보수가 가장 저렴한 인덱스 펀드를 적극 편입하는 것도 장기 투자에 바람직하다.

편입 채권의 만기가 긴 펀드를 고르는 것도 방법이다. 퇴직연금펀드는 주식 편입 비중이 40%로 제한돼 있어 나머지는 채권으로 운용하고 있고 개인연금펀드는 이런 제한은 없지만 유형에 따라 상당 비율 채권으로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연금 펀드들의 채권 운용이 연금자산의 특성에 맞게 장기물이 아니라 단기 · 중기물 심지어 초단기 유동성 상품으로 운용하고 있어 수익률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운용사들이 편입 채권 듀레이션(잔존 만기)을 장기화할 수 있는 여지 역시 충분하다. 주식 운용만 볼 게 아니라 편입 채권의 만기가 얼마나 긴가를 따져 펀드를 고른다면 그 자체로 1%포인트 이상의 초과 수익을 더 누릴 수 있다.

이상의 기준을 갖고 펀드를 선택한다면 연금펀드는 저렴한 비용,소득공제 및 과세 이연 등의 절세 효과,장기 적립식 투자 효과 등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최상의 투자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강성모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지원 상무 smkang@truefrie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