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가는 일상 풍경 속에 얼마나 놀랍고 아름답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모습이 숨어 있는지,평범한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한다.

프랑스의 사진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년)은 1920~1930년대 신제품이었던 라이카(Leica)라는 독일제 휴대용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휙휙 지나가는 일상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해냈다. 그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평범한 사람들의 뻔한 삶은 거룩한 장면으로 바뀌고,움직이는 현실은 정지된 미학으로 재창조됐다. 이처럼 그에게 사진은 이 세상을 초현실적인 요소로 가득 채우는 '유쾌한 마술'이었다.

브레송이 작고한 지 6년 만에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그가 부린 '마술'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근대의 세기'전은 다음 달 28일까지 이어진다. '브레송'전에는 시기별 대표작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전시되는 작품만 해도 1930~1960년대 미국 프랑스 중국 스페인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을 찾아다니며 찍은 오리지널 사진이 300여점이나 된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이미 1940년에 사진 컬렉션과 전시 업무 전담부서를 뒀을 정도로 세계 어느 미술관보다 사진 컬렉션에 무게를 두는 곳이다. 초창기부터 에드워드 스타이켄 같은 세계적 사진가가 디렉터를 맡기도 했다. 그러니 '순간 포착'의 마술로 현대미술의 새 장르를 개척한 브레송의 미국 첫 회고전을 이 곳에서 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역시 1932년 작 '프랑스 이에르(Hyeres,France)'.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사람을 골목 계단 위에서 재빠르게 잡아낸 작품이다.

같은 사진의 또 다른 에디션이 바로 지난달 뉴욕 소더비경매에서 1만달러에 낙찰됐다.

1952년 스페인 투우 현장에서 찍은 '산 페르미네 축제'는 경기 중인 투우사가 아니라 객석 앞에서 은밀히 대화하는 투우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이들의 바로 윗좌석에 거만하게 앉아 있는 여성의 화려한 의상과 이 투우사들의 복장이 불협화음인 듯 희한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스페인의 독특한 향기를 전달한다.

저널리스트로서 카르티에 브레송의 활동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초기 사진이 현실을 환상적인 분위기로 재탄생시킨 '그림 같은 사진'이었다면,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0년대부터 그의 작품은 사실을 분명하고 충격적으로 전달하는 '보도 사진'으로 완전히 바뀐다.

무너진 건물의 돌더미 위에 지쳐 쓰러진 여인을 차갑게 담은 '독일 데사우(Dessau,Germany 1945년)'나 전쟁 중 유럽에 묶여 있다가 돌아온 아들을 부둥켜안는 어머니를 담은 '뉴욕(New York 1946년)'은 사진 제목에서부터 기자의 냉정함을 볼 수 있다.

사실 프랑스의 일상 풍경을 담은 초기 사진을 찍을 때에도 브레송은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현장에 종일 잠복해 있곤 했다. 이미 기자였던 것이다.

그런 '끼'는 종군 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 더 빛났다. 그는 유럽은 물론 미국 중국 러시아(옛 소련) 쿠바 등 세계 곳곳의 현장을 누구보다도 많이 취재하러 다녔다. 1940년에는 독일군 포로가 되어 수감됐다가 탈출 시도 세 번 만인 1943년에 빠져나왔다.

미술관은 전 세계를 쏘다닌 그의 여정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장 입구 벽 전체를 대형 세계지도로 꾸몄다. 지독하게 발품을 팔았던 이 사진 작가와 함께 배낭을 메고 떠나는 느낌으로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

브레송은 1953년에 서구 사진가로서는 처음으로 소련 출입허가를 받았다. 폐허가 된 레닌그라드에 어울리지 않게 죽죽 솟아 있는 모던 스타일의 건물들,군복 입은 소년의 퀭한 눈….

전후(戰後)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의 사진들은 설명 한 줄 없이도 충분한 뉴스가 됐다.

당시 브레송만큼 전 세계 언론에 보도 사진이 많이 실린 사진기자가 없었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보도 사진이 실렸던 미국 '라이프(Life)' 등 잡지의 원본도 함께 전시돼 있어 현장감이 더욱 생생하다. 꼭 사진 거장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은 전시다.

뉴욕=이규현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