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31일 이슬람 시아파 순례객들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티그리스강의 알아이마 다리를 건널 때 누군가 외쳤다. "다리 위에 자폭 테러범이 있다. " 겁에 질린 순례객들이 서로 밀치고 넘어지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많은 사람이 압사했다. 다리 난간이 무너지면서 강에 빠져 익사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실제로는 테러범도,폭탄도 발견되지 않았으나 무려 1200여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군중을 휩쓴 공포가 참혹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라지만 집단에 편입될 땐 이성이 마비되기 쉽다. 옳든 그르든 집단을 따라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간혹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집단행동에 버젓이 동참하는 이유다. 극장 같은 폐쇄된 곳에 불이 나도 타서 죽는 사람보다 압사나 질식사하는 사람이 많은 게 보통이다. 주식시장에서 앞뒤 가리지 않는 투매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1987년 10월19일 월요일 뉴욕증시가 개장하자마자 '팔자' 주문이 쏟아졌다.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은 투매에 나섰고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이날 하루 다우존스 지수는 22.6%나 폭락했다. 투매는 단기간에 진정되기도 하지만 시장신뢰 추락으로 이어지며 오랜 기간 주식가격을 짓누를 수도 있다. 공포감은 처해 있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때 최고조에 달한다. 공포영화를 볼 때 '일'이 터지기 직전 가장 긴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로 세계 증시의 '공포지수'가 일제히 치솟았다. 투자자들의 공포심리를 나타내는 미국의 변동성(VIX)지수는 지난 7일 25% 가까이 올랐다. 일주일 새 88% 상승이다. VIX는 시카고옵션거래소에 상장된 S&P500 지수옵션의 향후 변동성을 반영하는 지표로,통상 VIX가 상승하면 주가가 하락한다. 유럽판 공포지수인 V스톡스 지수는 이날만 35% 나 급등해 2001년 9 · 11 테러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유럽 미국은 물론 아시아의 금융시장도 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유로존 위기가 어느 쪽으로 튈지 몰라 투자심리를 극도로 악화시키는 양상이다. 우리는 그리스와 경제 교류가 별로 없다지만 거미줄처럼 얽힌 세계 금융시스템이 문제다. 지금으로선 국제금융시장 경색에 대비하는 조치를 차분하게 취해나갈 수밖에 없다. 일이 닥쳤을 때 우왕좌왕하다보면 공포감이 확산되며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