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8일 러시아에서 온 가족 관광객 세명이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터를 찾았다. 75세의 노모와 이를 모시고 온 각각 53세와 57세의 부부가 한꺼번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두 여성 고객은 여성질환을 집중 검사하는 '여성정밀' 패키지를,남성 고객은 소화기질환 위주로 검사하는 '소화기정밀' 패키지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최신시설에서 뛰어난 의료진이 첨단장비를 이용해 가족력 및 생활습관을 바탕으로 한 특화된 검진을 해주고 가족건강계획까지 수립해주자 최상의 서비스라는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러시아에서는 받기 어려운 서비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5월 해외환자 유치 · 알선이 합법화된 이후 의료관광산업이 새로운 국가성장동력으로 떠오르면서 많은 국내 병원들이 외국인 환자 유치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터도 차별화된 서비스를 통해 최근까지 250명이 넘는 해외 고객을 유치했고 매월 10% 이상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해외교포에 그치지 않고 중국,일본,러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을 불러들이고 있는 게 강점이다.

특히 병원 내 국제진료센터에서 러시아인 코디네이터를 자체 고용하고,러시아인 의사가 직접 문진(問診)하고 건강검진 절차안내를 도와줘 러시아 고객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러시아 극동지역에는 무역 해운 수산업 등으로 큰 돈을 번 부유층이 많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경우 인구가 60만여명으로 이중 상위 10%는 1인당 국민소득(GNI)이 5만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극동지역에서는 기름진 식사와 운동부족으로 인구 10만명당 연간 826명이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집계한 세계 평균 심장병 사망률인 인구 10만명당 93명의 9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시립병원을 포함한 30여곳의 병원에 컴퓨터단층촬영기(CT)가 없을 정도로 의료환경이 열악해 상류층을 중심으로 매달 100여명이 치료차 해외로 나가는 실정이다. 이들은 대부분 러시아 의사의 알선이나 현지에 파견된 유치업체의 소개를 받아 싱가포르나 일본 등지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최근 한국으로 오는 환자가 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250여명의 해외고객 중 약 80명이 평생건강증진센터와 협약 관계에 있는 러시아 현지 에이전시를 통해 유치한 케이스다. 이 센터는 에이전시와 공동 마케팅 및 광고를 진행해 국내외 인지도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또 외국 현지에서 의료진 파견 상담,실시간 예약 시스템 확립,통역 지원 등 기본 인프라를 구축 중이며 건강검진을 경험한 고객을 중심으로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입소문이 나도록 유도하고 있다. 러시아 고객을 공략하면서 카자흐스탄 등 구 소련 국가로도 저변을 넓히는 전략을 모색 중이다.

가격 경쟁력 측면으로 보면 이 센터에서 심장 · 갑상선 · 전립선 초음파,컴퓨터단층촬영,자기공명영상촬영(MRI),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CT)등을 이용해 머리에서 발끝까지 70여개 항목을 검사하는 '마리안 프레스티지'패키지 가격을 선택할 경우 400만원이 들지만 이를 미국에서 시행한다면 1만5000~2만달러로 무려 4~5배가 넘게 든다.

또 외국인의 신체조건과 의료환경에 맞도록 설계한 특화 검진도 눈에 띈다. 예컨대 미국인에게는 자주 빈발하는 알레르기성 질환,의료보험 혜택이 미치지 않는 치과질환,틀에 박힌 식생활에 따른 영양 불균형 교정 프로그램을 별도로 제공한다. 어린이 건강검진을 중시하는 러시아 고객을 위해서는 '소아패키지'를 신설했다. 게다가 서울성모병원은 서울 강남의 교통 요지에 위치해 외국인의 국내 숙박 · 쇼핑 · 관광에도 유리하다.

서울성모병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코리아타운 월셔가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현지 협력사를 선정, 본격적인 미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보다 앞서 LA에 진출한 서울대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과 달리 의사와 간호사를 각 1명씩 파견, 최대한 전문적인 의료상담을 해주며 빠르고 간편하게 한국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절차를 밟아준다.

최규용 평생건강증진센터장(소화기내과 전문의)은 "국내 방문을 위한 항공권 및 숙박 예약 서비스는 원스톱으로 진행되고,국내 진료 후 미국으로 돌아간 다음에는 영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한국에 있는 해당 의료진과 수시로 면담하며 사후관리를 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