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최대 7500억유로(약 1120조원)의 대규모 재정안정 메커니즘을 구축, 재정위기에 처한 회원국에 구제금융을 지원키로 함으로써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의 계기를 마련했다. EU는 지난 9일 브뤼셀에서 소집된 긴급 재무장관회의에서 그리스를 넘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로 번지는 유로존 재정위기 확산 방지를 위해 채권발행, 차관, 채무보증 등으로 5000억유로의 기금을 마련키로 했다. 여기에 2500억유로의 국제통화기금(IMF) 기여분까지 합치면 EU 재정안정 메커니즘 규모는 총 7500억유로로 늘어난다.

이번 결정은 한마디로 '유럽판 IMF'를 출범(出帆)시켰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에 단발적으로 적용했던 구제금융 메커니즘을 대체할 '항구적'인 지원시스템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특히 유로존뿐 아니라 27개 EU 회원국이 모두 해당된다는 측면에서 완전하진 않지만 범유럽 금융안정망이 구축된 것으로 볼 수 있어 그동안 혼란이 거듭됐던 글로벌 시장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유럽 재정안정 메커니즘 구축 소식이 전해진 뒤 열린 어제 주요 아시아 증시는 대부분 큰 폭의 상승세로 돌아섰다. 지난 주말 이틀간 70포인트 넘게 빠졌던 코스피지수는 30.13포인트 올랐고 급등세를 보이던 원 · 달러 환율은 어제 하루 23원30전이나 내리는 등 시장은 급속도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을 놓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남유럽 재정위기의 급한 불은 껐지만 위기를 불러온 국가들의 근본적인 재정문제가 해소되기 어려운 까닭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이번 위기는 유로존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 바 크다"며 장기화를 경고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 국가와 우리의 교역 및 투자규모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안심할 일은 결코 아니다. 우리 시장에서 지난 주에만 2조원이 넘는 주식을 매도한 외국인이 어제도 3700억원 넘게 팔아치운 것은 위기 장기화에 대비한 자금회수일 수도 있다. 비록 시장이 일시적으로 안정됐지만 남유럽 재정위기를 지속적으로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