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와 같은 업종으로 경쟁사를 차려 영업을 했다면 불법일까,합법일까.

법원의 판단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기존 고객을 뺏으면 불법이지만,새로운 고객과 거래했다면 합법"이다. 소속사가 현실적인 손해를 봤는지 여부가 유 · 무죄를 가르는 잣대라는 의미다.

서울북부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최종두)는 업무상 배임죄로 검찰에 기소된 광고업자 원모씨(39)와 이모씨(42)의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고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소속사의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신뢰를 저버리고 손해를 가한 것이어서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소속사와 거래할 개연성이 없던 기업들과 거래한 것에 대해서도 원심이 유죄를 선고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확정됐다. 원씨 등은 광고기획업체인 A사의 디자인팀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디자인 관련 업무를 총괄해오다 2006년 8월 이씨를 대표이사로 하는 광고기획업체 B사를 설립했다.

이들은 2008년 말까지 A사 인쇄센터의 기존 거래처였던 C,D사와 거래처가 아니었던 E,F,G사 등과 거래해 수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원씨 등의 행각은 A사 대표가 이들의 책상에서 자사 고객과의 거래내용이 담긴 영수증을 발견하면서 발각됐다. A사는 원씨 등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1심 재판부는 C사 등 5개사와 거래한 실적을 모두 유죄로 판단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E,F,G사는 기존에 A사와 거래한 사실이 없고 C사와의 경쟁업체여서 A사와 거래할 수가 없었다"며 "원씨 등이 E,F,G사와 거래해 수령한 1억4000여만원은 A사의 재산상 손해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원씨 등을 대리한 법무법인 케이씨엘의 황규경 변호사는 "회사 직원이 소속사 고객을 뺏지 않는 경쟁업체를 운영한 것이 배임이냐 여부를 법원이 판단한 사례가 없었는데 이를 무죄로 인정한 첫 판결"이라고 말했다. 학원 강사가 퇴근 후 대학생 과외를 한다면 이를 배임으로 보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황 변호사는 "피해기업의 기술을 유출하지 않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아니어서 유사한 사례에 대해 법원이 다른 판결을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서울의 한 지방법원 판사는 "소속사의 거래처를 뺏지 않았어도 거래처 인맥과 영업 노하우 등을 이용했다면 유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