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非)과세 · 세금감면이 재정 악화의 주범이 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세금을 깎겠다는 공약이 흘러넘치고 대중 인기에 영합하려는 정책들이 쏟아지면서 조세감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세제(稅制)는 누더기가 되고 있다.

정부는 해마다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불요불급한 비과세 · 감면제도를 대폭 정비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매번 공언(空言)으로 끝나고 있다. 정부는 2014년 '균형 재정'을 맞추기 위해 조세감면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지만 이해집단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10년 새 3.7배로 증가

지난해 비과세 · 세금감면액은 모두 28조3968억원이었다. 국내총생산(GDP · 1063조591억원)의 2.6%에 달하는 규모다. 비과세 · 감면이 없었다면 작년 재정적자(관리대상수지 기준)는 43조2000억원에서 14조8032억원으로 줄었을 것이다. 올해 정부가 예상하는 재정 적자는 GDP의 2.7% 규모다. 이 역시 비과세 · 세금감면 부담이 없다면 균형재정으로 바꿀 수 있다.

비과세 · 세금감면은 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특례 규정을 적용해 세금을 물리지 않거나 깎아주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는 이 같은 조세감면 제도가 선심성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1965년에 조세감면규제법(현행 조세특례제한법)을 만들어 통합 관리해오고 있다. 각종 세금 혜택을 한 곳에 모아 관리하면 아무래도 통제하기가 쉬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1999년부터 매년 조세감면 항목별 실적을 담은 조세지출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는 것 역시 관리를 엄격히 하겠다는 조치다.

하지만 조세감면을 받는 항목과 금액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회에 조세감면 실태를 처음 보고한 1998년 7조7300억원이었던 비과세 · 감면 규모는 이후에도 해마다 계속 늘어 2005년 20조원을 넘어섰고 2008년에는 28조7800억원으로 불어났다. 불과 10년 만에 조세감면액이 3.7배로 늘어난 셈이다.

지난해에는 조세감면액이 2008년보다 3800억원(1.3%) 줄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때 서민지원 대책으로 내놓은 유가환급금이 이 기간 중 2조6416억원에서 1793억원으로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조세감면액은 2조800억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지은 국회예산정책처 세제분석팀 경제분석관은 "비과세 · 감면액은 경제성장에 비례하는 국세수입에 연동되기 때문에 특별한 축소 조치가 없는 한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정치적인 요구와 선심성 정책으로 비과세 · 세금감면 금액이 증가하다 보니 법이 정한 국세감면율 한도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국세에서 비과세 · 감면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14.7%로 국가재정법상 한도인 14.0%를 0.7%포인트 초과한 것이다.

◆포퓰리즘 수단으로 변질

조세감면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근로자 · 농어민 · 중소기업 · 사회보장 등 서민 · 취약계층 지원이 가장 많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국세감면액의 67%가량을 차지했다. 근로자 지원이 7조4309억원(26.2%)으로 가장 많았고 농어민(4조5168억원,15.9%) 사회보장(3조8792억원,13.7%) 중소기업 지원(3조1848억원,11.2%) 순이었다. 저소득 근로자들과 농어민 중소기업 등 약자를 보호하거나 목소리가 큰 특정 이익집단의 요구를 받아들여 신설된 조세감면 조항이 상당수에 달한다.

반면 경제개발 지원을 위한 투자촉진(3조2887억원,11.6%)과 연구개발(R&D) 지원(1조8606억원,6.6%) 분야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 · 사회정책연구부장은 "경제가 어려울 때 상대적으로 피해가 큰 사회 약자층에 세제지원책을 쓰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남발하는 것은 오히려 정부 의존도를 높여 민간 자생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치권의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에 따른 비과세 · 감면 신설은 엄격히 통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민 · 취약계층에 대한 세제 지원을 줄일 경우 정치적으로 공격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경제개발 지원용 조세감면 항목들이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난해 기업 설비투자 촉진 분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임시투자세액공제에 일몰조항을 적용해 없애려 했던 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 조세 전문가는 "복지성 세금감면은 소비지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성장잠재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큰 반면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 경제분야 조세 감면은 궁극적으로 세수기반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며 "조세감면 제도를 엄격하게 운용하되 경제 규모를 키우는 쪽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