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창의 경영] (1) "IBM 혁신 다룬 거스너 책에서 경영비법 배웠죠"
"아니 인문학이 왜 경영과 관계가 없습니까. 멀리 보고 멀리 생각하는 데에는 역사서의 가르침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람세스 2세 이야기를 다룬 크리스티앙 자크의 역사소설 《람세스》를 보면 이집트 문명이 그냥 이뤄진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로마인 이야기》나 《대망》은 또 얼마나 식견을 넓혀줍니까. 통찰력이나 시야를 넓히는 데에는 역사서가 효과 100%입니다. "

김인 삼성SDS 사장(61)은 펄쩍 뛰었다. "정보통신기술(ICT) 비즈니스와 별 관계가 없어보이는 인문학 또는 사회과학 책을 왜 읽느냐"고 물은 게 화근(?)이다. 그는 "'1+1=2'와 같은 수학이나 과학만으로는 기업을 경영할 수 없다"며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감성경영을 하려면 인문학 및 사회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당장 돈만 잘 번다고 경영을 잘 하는 건 아니죠.공학의 기초가 수학과 물리학이듯 경영학은 역사와 철학이 밑바탕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 책을 하나 둘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생각의 틀이 바뀌게 돼요. "

김 사장은 소문난 독서광이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상 뒤 서가에는 책이 빼곡하다. 《이휘소 평전》 《시 읽는 CEO》 《문화지능》 《권력의 조건》 《대국굴기》….서가에 꽂힌 책만 700~800권.최근 사무실을 정비하면서 3분의 2는 추려내 기증하고 나눠줬는데도 이 정도다. 책상 위에도 《시진핑 평전》 《기술의 대융합》 《새로운 미래가 온다》 등 여러 권이 놓여있다. 집에서도 성경을 비롯해 3권 이상의 책을 머리맡에 두고 산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긴 합니다. 한 달에 정독하는 것이 4~5권,그냥 훑어보는 것까지 하면 20권은 될 겁니다. 한 권을 통독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 여러 권을 갖다 놓고 짬짬이 습관적으로 봅니다. 《기술의 대융합》을 보다가 《시진핑 평전》이나 다른 책을 보는 식이죠.해외출장을 갈 땐 부피 때문에 종이책은 한두 권만 넣고,전자책으로 20권 정도 담아 가요. 주로 신문의 신간 소개 기사를 참고해 한 달에 세 번 정도는 서점에 가서 책을 사죠.금요일 퇴근길에 일부러 들르기도 하고요. "

신라호텔 총지배인으로 일하다 2003년 1월 삼성SDS 사장에 임명된 그는 가장 먼저 서점에 가서 책부터 찾았다. 그때 고른 책이 루 거스너의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였다. IBM을 전혀 모르던 루 거스너가 IBM을 혁신시킨 이야기에서 IT를 잘 모르는 자신이 삼성SDS를 어떻게 경영해야 할지 길을 찾았던 것.

김 사장이 취임 초부터 쓰기 시작한 'CEO의 월요편지'도 루 거스너가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책에서 읽은 내용을 월요편지에 자주 언급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지난해 1월까지 6년 동안 매주 'CEO의 월요편지'를 썼습니다. 올해부터는 '경영노트 3.0'으로 확대시켜 임직원들도 편지 쓰기에 참여하고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펼치고 그 속에서 공감과 조직의 활력을 다져가자는 것인데,편지경영이 진화한 거죠."

김 사장은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수시로 메모했다가 직원들에게 전해 주거나,임직원에게 책을 선물해 읽도록 하는 등 조직의 독서문화 진작에도 열심이다. 삼성SDS의 큰 사업장 네 곳 중 세 곳에 도서실을 운영하고 있고,장서가 1만3000권이 넘을 정도다. 덕분에 책을 직접 쓰는 직원도 많이 늘어 지난 10년간 직원들이 쓴 책이 40권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CEO의 독서가 경영에 구체적으로 도움이 될까. 그는 "숫자로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CEO가 미래의 방향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남보다 앞서 생각하고 도전정신을 키우는 데 책이 크게 기여한다는 것.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나 통찰력도 책에서 많이 얻는다고 했다.
예를 들면 《기술의 대융합》을 보면서 컨버전스 시대의 ICT 기업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영을 하려면 누가 더 정확한 정보를 더 빨리 찾아서 사업계획이나 미래에 접목시키느냐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책이나 연구보고서,언론매체의 기획물 같은 검증된 정보를 볼 수밖에 없죠.아무리 인터넷이 좋다고 해도 깊이는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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