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20년'.80년대 미국을 누르고 세계경제를 주름잡던 일본 기업의 위상이 90년대 이후 끊임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빗댄 말이다. 닛산,일본항공(JAL)의 몰락과 소니의 위축,게다가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었던 도요타의 리콜 사태에 이르기까지 최근 일본 주식회사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일본 기업의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다. 제국의 몰락에도 새로운 DNA를 가진 혁신기업들이 속속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니클로(UNIQLO)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우리가 유니클로의 눈부신 성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다양하다. 유니클로가 설립된 1984년은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가 시작된 무렵이다. 유니클로는 탄탄한 내수 시장이나 정부의 강력한 지원 등을 기반으로 성장한 전통적인 일본 대기업들과는 완전히 다른 토양에서 성장했다.

유니클로를 이끄는 야나이 다다시 회장(61)은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혁신적인 사고와 글로벌 감각을 갖춘 인물.그가 홍콩에서 캐주얼 의류전문 체인점인 지오다노를 창업한 '지미 라이'를 만난 것은 훗날 자신의 사업모델 구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일찍부터 미국의 갭(GAP)이나 홍콩의 지오다노 등을 연구해 구태의연한 일본 의류 유통산업에 새바람을 일으키고자 했다.

유니클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기업으로 자라(Zara),H&M,갭 등과 세계 패션 시장에서 어깨를 겨루고 있다. 통상 유니클로 같은 SPA 브랜드는 가격대가 저렴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에 민감하며, 대형 매장에서 다양한 품목을 진열하는 형태로 판매된다.

야나이 회장은 유니클로를 통해 의류의 개념 자체를 바꿔 놓았다. 그에게 의류란 고객이 돌아다니면서 살펴보고 구입하는 물건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조금씩 자주 사는 물건이었다. 유니클로는 누구나 입을 수 있는 베이직 캐주얼만을 고집했는데 가볍게 입을 수 있는 저렴한 캐주얼 의류라면 고객들이 구입하는 데 심각한 결단이 필요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불황과 경쟁으로 망하는 기업이 속출하는 일본 소매업이나 의류업에서 유니클로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사양산업은 있어도 사양기업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