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피가 흥건할 때가 매수 시기다. " 유대계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가(家)의 고(故)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남긴 신랄한 어록 중 하나다. 그러나 그는 부채 의무에 직면한 그리스의 불안한 정세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었다. 유럽은 미국의 골칫거리일까,그리고 현재를 매수 신호로 해석해도 될까.

한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 대비 부채 규모의 적정 수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1998년 초 담배 연기 가득하던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국 신사가 기억난다. 그는 기술벤처 투자용 포트폴리오를 저렴하게 팔고 있었는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해 580억달러 지원을 승인했고 원화 가치는 안정을 찾았다. 이땐 모든 것이 매각 대상이었다.

나는 요즘 유럽 상황이 매수 신호인지 좀 헷갈린다. IMF가 그리스에 거액을 제시하고 독일 등 EU 국가들이 그리스 퍼주기를 결정했을 때도 시장은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 연방준비은행과 재무부는 금융부문의 안정화를 위해 노력했다. 당시 부실자산 구제프로그램(TARP)을 가동해 자금 균형을 맞추려 했으며 리먼브러더스까지 파산시켰다. 연방준비은행은 국채 1조2000억달러로 모기지 담보증권과 화폐 등을 발행해 주식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서도록 했다.

국가가 도산 조짐을 보일 때 우리의 역할은 뭘까. 글로벌 은행은 생존을 위해 고리대금 이자부터 올리지만 모든 은행이 여유자금을 갖고 있진 않다. 1997년 아시아 위기 당시 IMF는 한국과 태국,인도네시아의 구제금융 전에 개혁과 세금 인상 등을 요구했다.

채무자가 디폴트나 은행 파산을 선언할 때 돈은 사라지고 디플레이션이 도래한다. 연방준비은행은 돈을 보충하기 위해 채권을 구입할 화폐를 찍어낸다. 이 시스템은 지난 14개월간 잘 굴러왔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화폐 발행 중단 시점이 모기지 담보증권 발행의 마감이라고 여기지만 나는 그가 주식시장을 지나치게 부양시켰다고 생각한다.

은행의 채무와 국가가 진 빚은 다르다. 신흥 시장은 그리스가 뱅크오브아메리카처럼 재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침체된 주식시장은 입법부의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 2008년 9월 첫 TARP가 실패했을 때 주식시장은 9% 떨어졌다. 유럽 입법부가 이에 대한 압력을 가할까. 불가능할 것 같다. 부족한 화폐를 공급하기 위해 디폴트와 유로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로화는 살아남을 것이며 결국엔 재정지원 혜택 문제로 귀결될 전망이다. 그리스의 공공부문은 노동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방학과 휴가는 길고 은퇴연금은 후하다. 이는 부채가 아닌 실질 소득에 따라 지급돼야 한다. 시장은 심판의 날을 기다린다. 유럽의 정책 입안자들이 시장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앤디 케슬러 前애널리스트

정리=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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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가에서 애널리스트와 투자은행가,헤지펀드 매니저로 일했으며 '우리가 어떻게 이 자리에 왔을까''변화사냥꾼' 등의 저자인 앤디 케슬러가 "시장이 불안정한 이유는 있다(The Markets Have Good Reasons To Be Nervous) "라는 제목으로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