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 재정위기 여파로 최근 3주 새 니켈 가격이 17% 이상 폭락하면서 국내 스테인리스스틸(STS) 도매시장이 '아노미'(혼돈)에 빠졌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업체들이 지난달 사상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던 비철금속 가격을 반영,이달 1일자로 STS 가격을 8% 이상 올렸으나 건축기자재 업체 등 수요자들은 최근 급락한 국제시세를 바라보며 도매가격 인하 시점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거래가 크게 줄면서 STS 가공제품 도매가가 공장 고시가격보다 낮아지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니켈은 STS 제조원가 중 70%가량을 차지한다.

◆수요자 끊긴 도매상가

지난 10일 오전 10시께 서울 문래동 철재시장.금속자재를 트럭으로 실어나르는 직원들로 북적여야 할 시간이었지만,상가 근처에 모인 상인들의 대화 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공작기계 작동음이 전부였다. 이곳에서 만난 도매업체 관계자는 "최근 잇따른 가격 인상과 건설경기 부진으로 수요자 발길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박수열 경진스텐 사장은 "최근 크게 오른 국제가격이 국내 STS 제품가격에 반영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제 니켈 가격이 크게 떨어지자 도매가격 하락을 예상하는 수요자들이 구매를 줄이고 있다"며 "하루 거래금액이 연초보다 30%가량 줄었다"고 털어놨다.

◆도매가격이 고시가격 밑돌아

경기도 시흥의 STS 대형 도매업체인 S사는 지난주 STS 300계열 열연판의 ㎏당 가격을 지난달(3700원)보다 300원(8.1%) 오른 4000원으로 고시했다. 니켈 국제가격 상승으로 포스코가 이달 초 ㎏당 가격을 300원 인상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회사가 실제 시장에서 파는 가격은 ㎏당 3900원 선이다. 포스코 인상분을 모두 반영하지 못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포스코가 코일 가격을 올렸지만 유럽발 악재로 니켈값이 급락하면서 가격 책정에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포스코 공장 출하가와 이를 규격에 맞게 절단한 가공제품 도매가격이 엇비슷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포스코의 이달 출하가는 STS HR(스테인리스 열연 코일) 기준으로 ㎏당 3850원.통상 1차 유통업체는 여기에 가공원가 100원을 얹어 팔지만,현재 도매시세는 3900원 선에 형성돼 있다.

◆국제시세 급락이 원인

STS 도매가격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니켈 국제가격이 단기간에 급락했기 때문이다. 런던금속거래소(LME) 니켈(3개월물) 가격은 지난달 20일 올 최고가(t당 2만7290달러)를 기록한 뒤 계속 떨어져 지난 주말 2만2550달러로 17.3% 급락했다.

니켈 국제가격이 이처럼 떨어진 것은 남유럽발 국가 신용위기가 확산된 데다 중국이 부동산 버블을 잡기 위해 긴축정책에 나선 것이 악재로 작용했다. 니켈값 하락으로 포스코가 국내 도매업체에 공급하는 STS 가격도 다음 달 ㎏당 200원 정도 하락할 것으로 도매상들은 내다봤다.

황영수 조달청 원자재시장분석실 책임연구원은 "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중국의 긴축정책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이 확인되지 않는 한 비철금속 가격이 지난달 전고점을 뚫고 올라가기는 힘들 것"으로 분석했다.

김철수/심성미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