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께 브리태니커에 '작은' 회사 직원들이 찾아왔다. 백과사전 소프트웨어 사업을 함께 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들고 왔다. 당시 이미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백과사전 부문 세계1등 회사인 브리태니커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때 무안을 당한 회사는 설립된 지 채 10년밖에 안된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브리태니커는 1768년 대백과사전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한 회사다. 2000달러나 하는 한 세트가 꾸준히 팔려나가는 쉬운 장사를 계속해 온 이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작은 회사를 거들떠 볼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더 작은 백과사전회사와 협력해 엔카르타(Encarta)라는 백과사전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지만 브리태니커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제는 1993년께부터 발생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MS오피스에 '엔카르타'를 끼워팔기 시작하면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판매가 곤두박질쳤다. 브리태니커는 CD롬을 만들었고 가격은 1세트(3장)당 995달러로 매겼다. "이 정도로 비싸면 차라리 책으로 된 백과사전을 사겠지"하는 것이 브리태니커 경영진의 '순진한' 기대였다. 1994년에는 온라인 버전까지 내놓았지만 CD도 온라인도 팔리지 않았다.

경영학자들은 브리태니커를 변화관리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다. 변화의 큰 물결을 감당할 수 없으면 스스로 일으키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나을 지 모르겠다. 이 시장은 결국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벤처가 차지했다. 혜성같이 나타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말이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