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교토식 경영' 배우기 열풍] (3) "기업은 公器…사회공헌 위해 기술개발하면 이윤 저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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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옴론의 '이념경영'
"더 나은 사회만들자"…아침마다 전직원 사헌 제창
"더 나은 사회만들자"…아침마다 전직원 사헌 제창
교토시 미나미구에 있는 옴론교토태양 공장.자동화기기 전문업체인 옴론의 자회사다. 전기소켓과 센서 파워서플라이 등을 생산하는 이 공장은 라인과 라인 사이 통행 공간이 보통 공장보다 훨씬 넓다. 엘리베이터도 일반 업무용의 2배 크기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사원들을 위해서다. 이 공장은 사원 170여명 중 70%인 120명이 신체장애인이다.
옴론은 이 장애인 재활공장을 1985년부터 인수해 운영 중이다. 규슈에도 비슷한 규모의 장애인 공장이 한 곳 더 있다. "장애인을 위해 단순히 기부금을 내기보다는 일할 기회를 줘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자"(다테이시 가즈마 옴론 창업자)는 취지에서다.
옴론을 비롯한 교토 기업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한다. 단순히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은 기업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 옴론이 이윤과 무관하게 장애인 재활공장을 두 곳이나 운영하는 이유다. 이 회사는 기본 이념부터가 '기업은 사회의 공기(公器)'다. '기업의 목적은 이익 창출'이란 경영학 교과서의 첫 줄부터 부정한다. 소위 '이념 경영'이다. 스에마스 지히로 교토대 교수는 "교토 기업은 '아메바 경영'처럼 조직을 소그룹화해 혁신하는 게 특징"이라며 "소그룹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구심력으로 기업 이념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익보다 이념이다'
"우리의 활동으로,우리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자." 교토역 뒤편 옴론 본사 사무실 곳곳에선 아침 8시15분이면 이런 구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이 회사의 헌법과 같은 사헌(社憲)을 전 직원이 업무 시작 전에 제창하는 것이다. '영업 목표를 달성하자''비용을 아끼자'와 같은 일반적인 사무실 구호와는 차원이 다르다.
옴론의 이념 경영은 창업과 뿌리를 같이한다. 창업자인 다테이시 가즈마 전 회장은 1932년 X레이 촬영용 타이머를 직접 개발해 창업하면서 직원들에게 이렇게 역설했다. "기업은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존재가치가 있고,이윤도 창출할 수 있으며 존속할 수 있다. " 이런 정신으로 옴론은 '일본 2위 이내,세계 5위 이내'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업은 아예 포기한다.
창업자의 3남인 다테이시 요시오 회장(70)은 이런 창업정신을 △도전정신 발휘 △사회적 수요 창조 △인간성 존중 등의 경영 이념으로 체계화했다.
◆인간을 위한 기술혁신
옴론이 생산하는 제품은 다양하다. 공장 자동화 제어기기,가정용 · 통신기기용 부품,도로교통제어시스템, 혈압계 등.그러나 핵심 기술은 딱 두 가지다. 센서와 컨트롤러 기술이다. 대부분 제품이 이 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그 중에서 전철역 무인개찰기와 현금자동지급기는 각각 1967년과 1971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들 제품의 또 하나 공통점은 인간을 위한 자동화 기기라는 것이다. 자동화 기술을 통해 사람과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한 제품들이다. 다테이시 창업자는 "자동화는 단순히 생산 효율만 높이는 수단이 아니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더 창조적인 활동을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숨어 있는 사회적 수요를 찾아내는 데 열중했다. 그 결과를 1970년 국제미래학회에서 '시니크(SINIC) 이론'이란 이름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 이론은 사회적 수요가 기술 혁신을 요구하면 그것이 과학을 자극하는 순환 과정을 거쳐 인간 사회가 진보한다는 내용이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옴론의 다테이시 창업자야말로 기술을 깊이 이해하고,이노베이션 비전을 확실히 아는 경영자"라고 극찬했다. 옴론이 최근 노인이 다가서면 승차권 발매기 글자가 자동으로 커지고,어린이가 다가서면 한자어를 쉬운 말로 풀어주는 화상 센서 등을 개발한 것도 '인간을 위한 기술'의 대표적 사례다.
◆기술 공개 '협창 마인드'
옴론의 인터넷 홈페이지(www.omron.co.jp)에 들어가면 13개 주요 제품의 20개 핵심 기술을 낱낱이 볼 수 있다. 옴론은 거액의 연구개발비를 들여 사운을 걸고 개발한 독자 기술도 숨기지 않는다. "다른 회사보다 앞섰다고 판단되는 우수 기술은 회사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게 원칙이다. 다른 회사가 우리의 기술과 융합해 인간과 사회에 더 필요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도와주자는 취지다. " (도다 다카시 옴론 홍보부 책임자)
옴론은 이를 '협창(協創) 마인드'라고 부른다. 다른 회사와 협동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다. 옴론이 이렇게 기술을 공개하면 전략적 제휴를 맺자는 요청이 쇄도한다. 이는 다시 옴론의 기술 개발에도 자극제가 된다고 도다 책임자는 귀띔했다.
"우리 회사의 구심력은 이념이다. 원심력은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구심력(기업 이념)과 원심력(사업 전개)을 일체화시키는 게 목표다. 인간과 사회를 위해 더 좋은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자는 얘기다. 이런 가치 창출을 위해선 경쟁사라도 협력할 수 있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다테이시 회장) 협창 마인드도 결국 '기업은 사회의 공기'라는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교토=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교토식 경영' 자세히 보려면 ▶hankyung.com/hot/ky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