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모든 개혁은 첫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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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혼란이다. (중략)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때 그 때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이다. "
1993년 초연돼 올리비에희곡상 등 주요 상을 휩쓴 연극 '아카디아'에 나오는 명대사다. 작가 스토포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연극에서 우리 시대에 실존(實存)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묻는다. 그는 너무나 빠른 변화의 시대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 바로 그 살아있음의 정점이라고 보았다.
실제가 그렇다. 꼭 2년여 전 촛불시위가 시작됐을 때 누구도 이 시위가 수개월간 계속될지 예상 못했다. 공안당국의 경우는 '길어야 20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한한 수의 방송국이나 마찬가지인 인터넷이 촉발시킨 전파력과 감성세대의 응집력은 과거의 경험을 아무 소용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과거의 경험만 소용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제까지 쌓아놓은 고객자료도, 업계를 놀라게 한 성공 경험도 모두 의미없는 과거로 변한다. 21세기 들어 기존 대기업이 아니라 아무런 '과거' 없는 젊은 기업들이 약진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알고 있는 것이 의미 없을 때는 모르고 덤비는 것이 훨씬 유리한 법이다.
지식과 기술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면서 사회적인 문제도 생긴다. 어른이 필요 없어지고 선배가 될수록 더욱 무능해진다. 이런 시대에 지식과 학습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정답은 과연 있는가. 미래는 어림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이런 변화의 속도가 이제부터 가속도를 높여 갈 것이라는 점이다. 거기다 지진이나 화산재처럼 변화를 미리 알아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변화도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묘한 것은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사람들은 더욱 느리게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개인화의 경향이 더욱 커진다는 얘기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되면 그만큼 현재에 매달리고 그런 것이 조직에서는 복지부동으로 나타난다.
토착비리를 척결한다고 해도 실제 당사자들이 콧방귀를 뀌고, 온 언론이 떠들썩하게 '스폰서 검사'를 욕해도 반성보다는 '재수없게 걸렸다'는 분위기가 생겨난다. 국방에 구멍이 뚫렸다는 참혹한 현실도 한때의 호들갑으로 지나갈지 모를 형국이다. 문제가 뭔지 누구라도 알 것 같은데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인간 본성에 관해서는 역사상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들어보자.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는 것보다 어렵고 위험한 것은 없다. 과거 질서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변한다. 새로운 질서에서 득을 볼 수도 있는 사람들은 미온적인 동조자가 될 뿐이다. 미온적인 반응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인데, 본래 사람들은 실제로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새로운 것을 전혀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
500년 전의 이 조언이 어떤가. 아무리 큰 변화가 있어도 닥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어쩌면 모든 개혁은 실패를 예정하고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첫사랑처럼 말이다. 개혁에 관한 한 정부나 공공부문에 비하면 훨씬 경험이 많은 기업에서 조차 조직 변화 시도의 평균 실패율이 50~70%에 달한다는 통계를 보면 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변화에서 기회를 잡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이겨내는 처세술이 유행할 것만 같다.
yskwon@hankyung.com
1993년 초연돼 올리비에희곡상 등 주요 상을 휩쓴 연극 '아카디아'에 나오는 명대사다. 작가 스토포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연극에서 우리 시대에 실존(實存)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묻는다. 그는 너무나 빠른 변화의 시대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 바로 그 살아있음의 정점이라고 보았다.
실제가 그렇다. 꼭 2년여 전 촛불시위가 시작됐을 때 누구도 이 시위가 수개월간 계속될지 예상 못했다. 공안당국의 경우는 '길어야 20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한한 수의 방송국이나 마찬가지인 인터넷이 촉발시킨 전파력과 감성세대의 응집력은 과거의 경험을 아무 소용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과거의 경험만 소용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제까지 쌓아놓은 고객자료도, 업계를 놀라게 한 성공 경험도 모두 의미없는 과거로 변한다. 21세기 들어 기존 대기업이 아니라 아무런 '과거' 없는 젊은 기업들이 약진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알고 있는 것이 의미 없을 때는 모르고 덤비는 것이 훨씬 유리한 법이다.
지식과 기술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면서 사회적인 문제도 생긴다. 어른이 필요 없어지고 선배가 될수록 더욱 무능해진다. 이런 시대에 지식과 학습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정답은 과연 있는가. 미래는 어림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이런 변화의 속도가 이제부터 가속도를 높여 갈 것이라는 점이다. 거기다 지진이나 화산재처럼 변화를 미리 알아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변화도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묘한 것은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사람들은 더욱 느리게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개인화의 경향이 더욱 커진다는 얘기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되면 그만큼 현재에 매달리고 그런 것이 조직에서는 복지부동으로 나타난다.
토착비리를 척결한다고 해도 실제 당사자들이 콧방귀를 뀌고, 온 언론이 떠들썩하게 '스폰서 검사'를 욕해도 반성보다는 '재수없게 걸렸다'는 분위기가 생겨난다. 국방에 구멍이 뚫렸다는 참혹한 현실도 한때의 호들갑으로 지나갈지 모를 형국이다. 문제가 뭔지 누구라도 알 것 같은데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인간 본성에 관해서는 역사상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들어보자.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는 것보다 어렵고 위험한 것은 없다. 과거 질서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변한다. 새로운 질서에서 득을 볼 수도 있는 사람들은 미온적인 동조자가 될 뿐이다. 미온적인 반응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인데, 본래 사람들은 실제로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새로운 것을 전혀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
500년 전의 이 조언이 어떤가. 아무리 큰 변화가 있어도 닥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어쩌면 모든 개혁은 실패를 예정하고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첫사랑처럼 말이다. 개혁에 관한 한 정부나 공공부문에 비하면 훨씬 경험이 많은 기업에서 조차 조직 변화 시도의 평균 실패율이 50~70%에 달한다는 통계를 보면 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변화에서 기회를 잡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이겨내는 처세술이 유행할 것만 같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