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과 두산중공업이 떠오르는 원자력 발전설비 시장을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이게 됐다. 정부의 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국내 시장을 독점해온 두산으로선 부담스러운 상대와 맞닥뜨리게 됐다. 현대중공업의 원전사업 진출이 국내 공공부문 원전사업의 수직계열화 논의와 맞물려 민간 기업들의 발전사업 재편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1위 조선사에서 종합중공업 회사로

현대중공업은 1999년 정부의 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른 발전사업 일원화 논의 과정에서 쓴 눈물을 삼켜야 했다. 삼성중공업의 보일러 설비를 이관받은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발전사업권을 놓고 막판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실패했다. 설비생산 및 일관시스템 구비,해외 수요 확보 등에서 비교우위를 주장했지만,공기업인 한국중공업 중심의 일원화 논리에 밀려 발전사업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중공업 민영화 과정에서는 일부 지분 이양 등 우월적 지위보장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허사가 됐다. 이후 해외 발전 플랜트 건설 분야에서만 발전사업의 명맥을 유지해 왔다. 원전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두산중공업의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주기기 납품 독점권이 유지되면서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작년 말 발전사업 일원화 조치가 해제된 데 이어 내년부터 두산중공업의 원전관련 주기기 독점 납품권이 종료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국내 발전사업뿐만 아니라 원전사업 진입 장벽이 한꺼번에 사라지게 된 것.

현대중공업의 내부 상황도 원전사업 진출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시황 침체에 따라 새로운 신성장 동력을 육성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져서다.

이미 현대중공업 내 조선업 비중은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지난해 전체 매출의 60%를 플랜트 등 비조선 분야에서 일궈냈다. 조선업 비중은 올해 더욱 줄어 처음으로 40% 이하로 내려갈 전망이다. 내부적으로 원전 및 국내 발전사업 진출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급팽창하고 있는 세계 원전시장도 현대중공업의 진입을 앞당긴 요인이 됐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될 원전은 430기,총액으로 120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 중 10~20%만 한국이 수주해도 국내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중 · 장기 원전 사업계획을 마련한 데 이어 관련 인력 확보에 나선 상태다. 발전설비 및 원전 주기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 건설도 검토 중이다.


◆원전사업 경쟁 본격화

정부는 작년 말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를 계기로 원전사업 수직계열화 작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전력(원전 수출 총괄),한국수력원자력(운영 · 개발 등 총괄),한국전력기술(설계 등 기술용역) 등이 병렬식으로 주도하고 있는 원전사업 공공부문을 좀더 유기적으로 재편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 과정에서 두산중공업이 독점하고 있는 주기기 등 기자재 공급부문에서도 경쟁체제를 허용할 방침이다. 두산중공업은 원전 핵심 설비인 원자로와 증기발생기를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2008년 미국에서 발주한 신규 원전 프로젝트의 핵심 주기기를 수주한 데 이어 작년 말 UAE 공급 계약을 따내는 등 지난 20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 기자재를 공급해 왔다.

현대중공업이 원전 시장에 진출키로 하면서 두산중공업의 독점적 지위가 깨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성기종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현대중공업이 원전 원천기술을 보유한 해외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주기기,특히 원자로 부문에서 두산중공업의 독점적 지위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중공업은 현대중공업의 원전사업 진출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으로 인한 덤핑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두산중공업 고위 관계자는 "현재 연간 원전 2기를 만들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데다 향후 5기를 생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비를 확대 중"이라며 "국내 신규 원전 물량과 수출 물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이 진입한다면 자칫 국내 저가 입찰 및 덤핑 수출로 인해 공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미 해외 발전사업 분야에선 현대중공업과 두산중공업의 극한 경쟁이 시작된 지 오래다. 단일 프로젝트로 사상 최대인 40억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라빅 6단계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놓고 현대중공업과 두산중공업은 6개월이 넘도록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입찰 결과는 이르면 이달 안에 발표된다.

현대중공업의 원전사업 진출을 계기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역할 재정립에 대한 공론화도 예상된다. 프랑스의 아레바나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처럼 한 회사가 전체적인 원전사업을 통합 수행해야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