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는 작업입니다. 물리적인 색을 통해 마음의 색과 영감의 색을 보려면 감각으로 둘러싸인 현실에서 떨어져 나올 필요가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 관람객들을 일정한 전시 공간에 서 있게 하는 거죠."

서울 경운동 갤러리 아트뱅크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29일까지) 참석차 방한한 프랑스 인기 작가 앙드레 브라질리에(81)는 13일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미술 행위는 단순히 색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관람객에게 아름다운 색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과 차이점을 통해 각각 다른 색을 보게 된다"며 "그런 점에서 내 작품은 전적으로 관람객에게 의지한다"고 덧붙였다.

브라질리에는 프랑스에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작가다. 1929년 프랑스 중서부 소뮈르에서 태어난 그는 여성과 음악,말,자연 풍경 등을 간결한 구도와 우아한 색감으로 묘사해 색채 예술의 새로운 패턴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리 국립예술학교 시절 베르나르 뷔페 등과 활동한 그는 23세에 루이 14세가 제정한 '프리 드 롬 예술상'을 수상하며 유럽 화단에서 주목을 받았다. 2005년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그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나의 영혼과 육신을 키워주는 젖줄이자,물질과 정신성을 연결해주는 촉매"라고 답했다.

"그림이란 감성을 조형화하는 작업입니다. 봄에는 주로 초록색을 활용해 몸 안에 갇혀 있는 감성을 살려내고,여름에는 노란색,가을에는 청색에 더 방점을 둡니다. "

특별한 색채를 강조해 인간과 자연,정신과 육체 사이의 소통을 꾀한다는 얘기다. 그는 또 "우리가 속한 세계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나를 잘 보는 것"이라며 "여성이나 말,나무 등 친화적인 대상을 통해 또 다른 나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음악적인 소재도 아주 특별한 메타포로 다가온다. "1959년 첫 전시 주제는 '음악의 주위에서'였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제 그림에 하모니를 제공하는 수단이죠.작업실에서 듣는 베토벤,모차르트 등의 화음은 늘 제 조형성을 깨워주거든요. 음악을 통해 대상을 단순화하고 생략합니다. "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애호가들이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일본 화가들이 간결함에 포커스를 맞춘 것처럼 적은 붓질로 사물의 정수(에센스)를 주려고 한다"며 "적게 말하면서 또한 많은 것을 말하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실제로 도쿄 미쓰코시백화점 갤러리를 비롯해 니치도 화랑,요시 화랑 등 일본에서 20여 차례나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그는 팔순이 넘었지만 요즘도 하루 12시간 이상 캔버스 앞에 앉아서 작업한다. 그리는 것은 노동이라기보다 세상과의 호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지금도,앞으로도 영원히 그릴 겁니다. 그림은 곧 나의 즐거운 생활이거든요. "

이번 전시에는 1980년대 후반부터 지난해까지 그린 유화 50여점과 석판화 100여점이 출품됐다. 절묘한 색감 처리로 신비로우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들이다. 한편 지난 5일 뉴욕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그의 30호(60.5X91.9㎝)크기 작품이 7700만원(수수료 포함)에 낙찰됐다. (02)737-032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